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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한글날 일어났던 북한 테러

입력 2013-10-08 11:56 수정 2013-10-17 22:43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하지만 30년 전 한글날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테러]가 일어난 날이다.

▲ 1983년 10월 9일 한글날, [아웅산 테러] 직전 사진.

1983년 10월 9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 순방 중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첫 방문국인 버마(現미얀마)에 도착,
아웅산 묘소를 찾았을 때
갑자기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미리 도착해 대통령을 기다리던
수행원과 기자 등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직후
나머지 일정을 중단하고
이튿날 새벽 귀국했다.

▲ 1983년 10월 9일 한글날, [아웅산 테러] 직후 사진. 29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정부는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
버마 측과 합동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이 [테러]는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소속
진 모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등이
저지른 테러임이 밝혀졌다.

이들은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 참사관 <전창휘>의 집에 숨어 있다,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버마에 도착하기 하루 전 새벽에
아웅산 묘소에 잠입,
지붕에 2개의 폭탄을 설치했던 것이다.

조사 결과가 나오자
미얀마 정부는
북한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내쫓았다.
같은 해 12월 9일
양곤지구 인민법원 제8특별 재판부는
테러범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조사 결과를 듣고,
북한에 [전면적인 응징보복]을 가하려 했으나
미국 정부의 만류로 포기하고,
대신 국방과학연구소를 재창설하고,
<현무> 미사일을 다시 개발하는 등
전력증강에 박차를 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국군 정보사 예하 특작부대원들. 벌초계획이 승인되면 이들이 적의 목을 따러 갔을 것이다.

실제 이때 육사 12기 출신 장성들이 주도,
[벌초계획]이라는 보복응징작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아웅산 테러]로 순국한
외교사절 참배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오는 9일 오전 9시,
제30주기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묘소 참배]가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1묘역에서
외교부 주관으로 거행된다고 전했다.

이번 참배행사에는
외교부 1, 2차관과
국장급 이상 간부 4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아웅산 테러]로 순국한
외교사절 17위(位)는
1983년 10월 13일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1묘역 8∼24호에
합동 국민장으로 안장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아웅산 테러 30주기 추모식]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집례를 포함, 행사에 필요한 물자·인력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음은 [아웅산 테러]로 순국한
외교사절 17위 명단이다.


故 서석준 부총리
故 이범석 외무부 장관
故 김동휘 상공부 장관
故 서상철 동자부 장관
故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故 심상우 민정당 비서실장
故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
故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
故 이기욱 재무부 차관
故 김재익 경제수석 비서관
故 하동선 해외협력기획단장
故 이계철 주 버마 대사
故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故 이재관 청와대 공보비서관
故 정태진 대통령 경호원
故 한경희 대통령 경호원
故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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