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 The Wrath Of God, 1972)
감독 :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 떠난 스페인 원정대 대장 아귀레는 부와 명성을 거머쥐겠단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그러나 탐험은 순탄치 않았다.
원주민들의 독화살은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고,
열병은 들끓고,
식량은 부족했다.
부하들은 하나씩 사라져가고,
결국 미쳐버린 아귀레는 “내가 신대륙의 왕”이라며
자신의 딸과 결혼하려 한다.
핏줄의 순수성을 이유로.끝내 혼자 남은 아귀레.
자신이 진짜로 왕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미친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된다.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암울함]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마저 느껴진다.
욕망의 저열함에 대해 이렇게까지 끈질긴 추적을 벌인 영화도 흔치 않다.
영화 전체의 플롯이 오직 [욕망에 대한 해석]으로 집중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인간의 욕망은 이렇게나 끔찍할 뿐일까?
이를 긍정한다면,
우리는 의문이 생긴다.개개인의 이기주의로 이뤄진다는 자본주의 경제학.
그 근본이 욕망에 기초한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가라는 의문이다.
결국 타인에 대한 약탈로 세상이 귀결되는가라는 의문이다.패기와 욕망이 결합된 시대
그래서 욕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생긴다.
플라톤은 인간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로 패기, 욕망, 이성을 꼽았다.이성이란 지혜와 관련되는 것으로 인간의 가장 숭고한 영역이다.
패기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즉 자존심이다.
욕망이란 육신의 안전을 보살피는 동물적 영역이다.일단 패기와 욕망을 한 범주로 넣고 생각하자.
아귀레의 비극은 단순히 몸보신 잘 하자는 욕망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왕 한 번 되어보자고 패기 부려서 생긴 일도 아니다.
아귀레의 비극은 욕망과 패기가 잘못 엉켜서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을 일단 크게 구별하지 말자는 것이다.
최소한 당시의 시대 배경에서 말이다.신대륙 정복에서 출발한 유럽 국가들의 행태도 결국 패기와 욕망이 엉켜있는 문제다.
단순히 노동력과 자원을 좀 더 착취하자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너희 나라보다 땅이 더 넓어”라는 자존심 문제도 걸려있다.이렇듯 패기와 욕망은 쉽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아니었다.
명제가 과거형인 이유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이제 서서히 둘은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강들이 식민지를 풀어준 이유 중 하나는 식민지를 관리하는 비용보다 국가 대 국가로 자유롭게 교역하는 이익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패기와 욕망이 갈라지는 순간이다.자본주의 초기, 돈만 많으면 패기가 보장되는 시대도 있었다.
아직 진행 중이긴 하지만,
여기서도 변화의 징조는 보이고 있다.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라는 미국 사회의 자본가들이 부를 세습하기보다는 사회에 기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그것이 자긍심이 되고, 뿌듯함이 된다.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제 단순한 이윤창출에 그치기보단,
사회적 기업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모두 패기와 욕망이 갈라지는 순간이다.장기적으로 살아 숨쉬는 고전의 뜻
고전의 가르침은 단기적 시각에 연연하지 않는다.
한때 패기와 욕망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플라톤이 패기와 욕망을 구별한 것은 결국 옳았다는 말이다.자본주의의 기초 전제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라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경제학의 효시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 이전의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이미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발원된 도덕감정이 결국 인류를 번영으로 이끈다”고 주장했다.
결국 번영은 인간 개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비롯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기심이 [selfish]가 아니라,
본디 [self interest]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은 결국 타인의 이익이 보장될 때에야 최대가 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논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결국 자본주의의 기초 전제는 흔히 오해하듯 [타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개인의 욕망] 따위가 아니다.
바로 [타인의 영역을 존중할 때, 이익도 최대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개인들의 욕망]인 것이다.<국부론>의 원제가 <Wealth of Nation>이 아니라 <Wealth of Nations>인 까닭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인류는 초기 봉건주의, 중상주의, 제국주의 시대의 아집을 못 버렸다.
그러니 진짜 자본주의를 아직 시작도 못한 것이다.자본주의는 진화하고 있다.
그 과정은 물론 아직도 멀고 험난하다.그러나 희망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플라톤이 얘기한 [이성, 욕망, 패기] 외에 인간의 중요한 특징을 하나 더 들라면 바로 [희망]이다.
희망마저 없다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조차 의문이다.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본 영화의 부제는 [신의 분노]다.
신은 아귀레에게 분노했다.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신이 바라는 삶의 원칙은 무엇일까?어쩌면 자긍심을 지키고 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패기 말이다.
그 패기를 지키며 욕망을 이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의 원칙은 아닐까?◆ 홍훈표 = 자유기고가
-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전공
- 철학우화집 <동그라미씨의 말풍선> 출간 예정
-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단막뮤지컬 <버무려라 라디오> 극본 집필
- <지촌 이진순 선집> 편찬요원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