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송하라”는 군단장 명령 거부하며 몇 배의 중공군과 맞선 지휘관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31일 폴 프리먼 美육군 대령을 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 폴 프리먼 대령은 지평리 전투에서의 연합군 지휘관이었다.

    지평리 전투라고 하면,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참전한 백전노장 삼성장군이 스스로 계급을 중령으로 낮춰 참전한, 프랑스 대대 지휘관 몽클라르 중령을 떠올릴 것이다.   

    미군에게도 몽클라르 중령과 맞먹는 인물이 있다.
    폴 프리먼 대령이다.
    그는 박격포탄 공격으로 부상을 입어 “후송하라”는 군단장의 명령도 거부하고 전투를 지휘했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나흘 동안 경기 양평군 지평리에서 23연대 전투단과 군단 규모의 중공군이 벌인 격전이다.

    지평리는 美9군단과 美10군단을 연결하는 곳으로 서울-양평-홍천-횡성-여주를 연결하는 교통 요지다.

    연합군이 이곳을 뺏기면 서부전선 측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당시 한미 연합군은 중공군 공세를 버티지 못해 후퇴한 상태였고, 美23연대 전투단만 홀로 진지를 지키고 있었다.

    2월 13일 낮 중공군 2개 사단이 먼저 지평리 주변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차단했다.

    밤이 되자 중공군은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미군은 반격을 가했지만, 중공군은 8번 후퇴하면서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 와중에 폴 프리먼 대령은 지휘소 텐트에 날아든 중공군의 박격포탄에 부상을 당했다.
    이를 보고받은 아몬드 美10군단장이 프리먼 대령을 후송시키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전선을 지키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美육군은 지평리 전투를 남북전쟁의 판도를 가른 게티즈버그 전투와 견줄 정도로 자랑스러운 전투로 평가하고 있다.
    폴 프리먼 대령의 용감한 전투지휘는 나중에 사관학교 교재에도 실렸다.

    폴 프리먼 대령은 이후 4성 장군까지 진급한 뒤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