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통령마다 특색 음식 눈길, 서민 이미지 강조에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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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하면 멸치, 그 육수로 담아낸 시원한 칼국수.DJ하면 남도 음식, 그 중 특히 즐겼다는 삭힌 홍어.MB하면 포항, 특산물로 유명한 김에 싸먹는 과메기.역대 대통령들을 살펴보면 모두 고향이나 성격 등 대통령의 특색을 담은 대표 음식이 있다.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음식이 있다는 건?정치적으로 보면 무엇보다 ‘서민적’ 모습을 강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이미지메이킹’을 위해 측근들이 사용하는 오래된 전략 중 하나이기도 하다.그래서 대통령의 음식에는 ‘간편하고’, ‘저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그런 음식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드는 게 보좌진들의 심리.오죽하면 부산 출신이지만 호남색을 띄지 않을 수 없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평소 즐기던 삼계탕까지 대표 음식으로 갖다 붙일 정도였을까.
- ▲ 지난 대선 기간 중 재래시장을 방문해 물건을 사는 박근혜 당선인 ⓒ 연합뉴스
그렇다면 18대 대통령 박근혜 당선인의 대표 음식은 과연 뭘까?고향인 대구라면 유명한 막창이나 매운갈비찜 혹은 납작만두 등이 떠오른다.하지만 여성 당선인인 만큼 ‘술안주(?)’가 연상되는 음식은 잘 와 닿지 않는다.사실 박 당선인에게는 아직 특별히 알려진 음식이 없다.음식 뿐 아니라 취미, 패션, 헤어스타일 등 다른 개인적 취향도 마찬가지다.서민적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곧잘 받는 만큼 이런 베일에 가려져 있는 모습이 결코 좋아보이진 않는다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의견.청와대 안팎에서 벌써부터 ‘박근혜 음식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음식은 과메기다.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과메기를 먹는 모습 ⓒ 연합뉴스
박근혜 음식에 대한 궁금증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은 기자들의 호기심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인들의 관심이 더 많아 보인다.‘대통령의 음식’은 정치적 의미 외에도 경제적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대통령이 직접 그 음식을 먹는 모습은 웬만한 CF스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광고 효과를 불러온다.DJ시절 전라도 특산물인 홍어는 전국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했고, 현 정부를 거치며 과메기 유통량이 부쩍 늘었다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여기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최근 인수위가 꾸려진 삼청동의 한 식당이 ‘박근혜 음식’을 선점하겠다며 나섰다.상호명까지 ‘달성’으로 바꿨다.대구의 지명인 달성은 박 당선인이 98년부터 쭉 지켜온 지역구다.대구 출신 사장이 운영하는 이 집 대표 메뉴는 쭈꾸미와 만두.대구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이다.쭈꾸미는 술안주로 만두는 간식으로. 박근혜 하면 떠오르는 음식으로 만들겠다며 열정이 대단하다.과거를 되짚어보면 박 당선인이 몇 차례 언급한 음식이 있긴 하다.바로 비빔밥.지난 대선 당시 박 당선인은 ‘국민면접’ 방식의 단독 토론회를 가지면서 내놓은 ‘박근혜 이력서’에 가장 자신 있는 음식으로 비빔밥을 적었다.아마도 국민대통합을 기치로 내세운 당선인이 전략적으로 내세운 음식이 아닐까 한다.전북 전주가 비빔밥으로 유명하니 딱 알맞긴 했다.당시 박 당선인은 “각기 다른 재료들이 섞여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는 비빔밥처럼, 우리도 각자 다 개성이 다르고 지역의 특성도 다르지만 다 같이 융합해 하나가 될 때 시너지 효과가 나고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하게 될 것”이라는 다소 정치적인(?) 발언을 했었다.좀, 재미가 없다는 평이 나왔다.
- ▲ 한명의 정치인을 상징하는 음식은 큰 의미를 가진다. 사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겼다는 홍어를 민주당 고위 인사들이 함께 즐기는 모습 ⓒ 연합뉴스
아마도 ‘박근혜 음식’은 취임 이후에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보통 ‘대통령의 음식’은 취임 후 청와대에서 가지는 초청 식사자리에서 대통령이 어떤 음식을 내놓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중요한 만찬이나 출입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는 항상 과메기를 챙겼다.그런데 지금 분위기라면 어쩌면 유일하게 그런 음식이 없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이미지에서 얼큰한 해장국을 들이킨다거나 토속적인 음식을 먹는게 상상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당선인 스스로 그런 이미지 메이킹에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는 점이다.괜한 서민 코스프레를 싫어하는 당선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굳이 과거의 남성 대통령들 처럼 푸짐하고 얼큰한 한식에만 국한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떡볶이도 좋고 짜장면도 나쁠 것 없어 보인다.
햄버거면 또 어떻나.‘대통령의 음식’이란 게 쉽게 보면 단순한 가십거리로 생각할 수도 있다.하지만 한국인에게 ‘음식’은 살기 위해 먹는 영양분 이상의 의미가 있다.밥 한 끼로 정을 나눌 수 있고 그 사람의 인생철학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단한 매개체이기도 하다.박근혜 음식이 비빔밥이 될지, 어느 한 가게 주인장의 소원대로 만두가 될지는 모르겠다.그래도 꼭 그런 음식이 하나 쯤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대통령이 시골 5일장 귀퉁이에 걸터앉아 장터 음식을 먹는 모습을 떠올리고 싶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전통적인 상상력을 너무 모른척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비밀이 많은, 무척이나 외로워 보이는 대통령으로 남는 것 보다는 푸근한 대통령이었으면 하기 때문이다.그런 상상력을 가장 먼저 심어준 사람이 당선인의 부친 아니었던가.
- ▲ 김밥과 막걸리로 논두렁에 앉아 농부들과 어울리던 박정희의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