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할 것인가
이덕기 | 자유기고가
최근 들어 북한 세습독재의 돈 씀씀이를 알곡으로 환산하는 보도를 자주 본다. 아마도 북한주민 식량난의 엄중함이 절정에 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2011년 12월에 뒈진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해 써버린 돈이 1억 1,000만 달러에 달하는데 대형 동상·모자이크 벽화·초상화 교체 등등이며, 이 돈이면 옥수수 38만 톤을 살 수 있고 한해 식량 부족분을 거의 메꿀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총 28억∼32억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옥수수 933만∼1,066만 톤을 살 수 있는 금액이며 북한주민 2,400만명에게 31∼36개월 동안 공급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김정일이 뒈지고 나서 이 돼지 시체를 썩지 않게 처리해서 정육점(精肉店) 불빛 아래 눕혀놓는데 100만 달러가 들고 이를 보존하는데 연간 150만 달러가 들어간다고 한다. 물론 애비 돼지도 그랬으니 비용이 이제 곱하기 2가 된다. 이 돈으로는 옥수수를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참 서글픈 코미디가 아닌가.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의 체제 유지와 3대 세습이 가능한 이유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즉 기획(企劃) 기아(飢餓)이다. 주민을 일부러 치밀한 계산 하에 굶긴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한다. “가난하면 적(敵)을 선택할 수가 없다. 우선은 가난에 지배당하고, 결국엔 운명에 지배당하게 된다”고. 내리 두끼만 굶어 보자. 우리는 거의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배가 고프다는 것 밖에는...
그런데 인류 역사상 단지 인민들의 배가 고파서 혁명이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배가 아파야 한다.
즉 “나는 이렇게 못 먹고 못사는데, 저렇게 잘 먹고 잘 사는 놈들이 있단 말이야. 우리네 땅에서는 이렇게 배가 고픈데 이웃에서는 잘 먹고 잘 산다고, 이유가 뭐냐?” 이런 공감대(共感帶)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북한 세습독재 집단이 어떻게 인민의 고혈(膏血)을 빨아 자기들 배만 채우는지, 다른 나라 또는 남조선에서는 어떤지’ 이런 정보가 없다. 북한의 세습독재가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對北) 전단 살포나 우리 군(軍)의 심리전에 대해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가 아무리 굶주리는 북한주민을 위해 식량을 지원한들 그 식량은 절대 주민들에게 제대로 돌아 갈 수 없다. 역설적(逆說的)으로 세습독재 권력만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바닥빨갱이(종북 좌익세력)와 그를 지원하는 정치집단, 그리고 ‘쓸모있는 얼간이’(소위 진보적인 학자·언론인·종교인·광대·풍각쟁이 등등)들이 너무 잘 쳐먹어서 뒈진 돼지들을 정육점 조명 밑에 썩지 않게 진열하는 것이 맞다고-아니면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냐고 주장하면서, 인도주의 화신(化身)인 양 대북 지원을 게거품 물고 주장하는 이면(裏面)에는 이런 불편한 진실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올해 두 번의 선거와 여러 헤프닝을 통해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한 반(反)대한민국 세력, 즉 북한 세습독재를 추종하고 또는 그에 굴복하여 대한민국의 존립마저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무리들과 정치집단의 거대한 뿌리를 확인한 바 있다. 아마도 이들은 동장군(冬將軍)이 물러날 때 쯤이면 또 다시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광우병 폭력난동)와 같이 대한민국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得勢)하는 사회”라며 혼란과 갈등을 증폭시키는데 혈안이 될 것이다.
우리사회는 무척 취약하다. 왜? ‘배고픈 사람’은 별로 없는데 ‘배 아픈 사람’이 너무 많고, 그걸 부추기는 정보도 너무 많다. 체제 간의 싸움은 ‘강(强)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자’가 강하고 이기는 자가 된다. 아마도 지금은 승부(勝負)의 분수령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최후의 결전’을 앞둔 ‘마지막(?) 전초전(前哨戰)’이 될 수도 있다. 승리의 최종 목적지는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이다. 이제 바닥빨갱이와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부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자멸(自滅)한다면, 우리조국 대한민국은 영원한 혼란과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고 결국 북한 세습독재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냉전의 와중에서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인해 민족과 땅덩어리가 갈라진 곳이 세군데 있었다. 월남(越南)과 독일(獨逸), 그리고 한반도이다. 하지만 운명은 판이하게 바뀌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세 곳 모두 한편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또 다른 한편은 사회주의·공산체제로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공산당의 암약(暗躍)과 준동(蠢動), 그리고 지도층의 부패와 국민들의 무사안일(無事安逸)을 극복하지 못한 나라는 결국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자유민주 정부에 반대하면서 동맹을 내친 채 전쟁을 기피하고 굴종적인 평화를 구걸하던 그 나라 얼간이-지식인·종교인·기회주의 정치인들은 전쟁의 참화(慘禍) 이후에 결국 공산주의 교화소(敎化所)에서 스러져 버렸고, 무장투쟁을 하던 내부의 사회주의자들마저도 결국은 제거되고 말았다.
이와 반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강력하게 내부의 적(敵)을 철저히 차단하고 투명한 리더십으로 국력신장과 함께 영리한 외교를 펼쳤던 나라는 결국 사회주의에 완승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민족을 재(再)통일 했다.
그렇다면 조국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마지막 전초전’를 위해, 또한 곧 이어질 ‘최후의 결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힘을 모아야 한다. 각자 사사(私私)로운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흩어지면 안된다.
우리의 중심을 오직 조국 대한민국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부패하지 않고 정의로울 수 있어야 한다. 명분과 도덕성에서 월등한 우위를 점해야 하며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리고 몸을 던져 내 자식부터, 젊은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절대 피하지 말고 조국 대한민국의 가치와 자랑스런 ‘고난(苦難)의 역사’를 절규(絶叫)해야 한다. 이 땅에서 부도덕한 전쟁을 일으켜 우리민족 300만을 희생시키고, 독재세습을 위해 200만명 이상을 굶어죽게 만든 반역집단에 대해 책임을 추궁(追窮)하기는 커녕 왜 그랬는지 이유조차 묻지 못하는, 그 세습독재 앞에서는 그저 한없이 작아지고 비겁해지는 바닥빨갱이와 쓸모있는 얼간이들의 위선(僞善)을 철저히 폭로하고 질타(叱咤)해야 한다.
드디어 때가 왔다. < 더 끼 >
# 우리는 “생명이 없어졌거나 끊어진” 상태를 “죽었다”라고 표현한다. 즉 “우리 옆집 강아지가 죽었다” 이렇게 쓴다. 그러나 전쟁으로 동족 300만을 희생시키고 독재세습을 위해 200만명 이상의 주민을 굶어죽게 만든, 그리고 인민의 고혈을 빨아 너무 잘 쳐먹어서 생명이 끊어진 주범들에게 “죽었다”라는 표현은 너무 호화(?) 스럽다. 따라서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 독재자 부자에게 “뒈졌다”라는 표현을 쓴데 대해 아주 적합한 단어를 선택했다고 격려하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