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생 명단에 가수 타블로의 이름이 없는데요?"
2009년 11월경 한 네티즌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논란의 불씨가 됐다.
타블로의 학력에 의심을 품게 된 네티즌들은 그가 이전에 방송 중 내뱉었던 발언 하나하나를 뒤져가며 '오류'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스탠퍼드대 재학 기간 중 국내에서 학원 강사로 활동한 전력과, 실제 이름(다니엘 선웅 리)과 필명(다니엘 아만드 리)이 다르다는 사실 등은 그가 내세웠던 학력이 전부 날조된 거짓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명문 스탠퍼드대학교의 학석사 과정을 3년 반만에 조기졸업한 사실은 졸지에 '소설'로 치부됐다. 일부 네티즌은 타블로가 수강한 과목이 실제 대학에는 개설되지 않았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천재가수', '엄친아'의 이미지는 어느덧 '위선자'와 '거짓말쟁이'로 점철돼 갔다.
2003년 'Map Of The Human Soul'를 발표하며 수년간 국내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천재 뮤지션은, 만 6년 만에 전국민을 농락한 '희대의 사기꾼'이 돼 있었다.
-
■ 개인 학력 검증 위해 국가기관 총동원
20만명….
타블로의 과거 행적을 온전히 믿지 못해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한 네티즌의 숫자다.
지금껏 한 개인의 신상에 대해 수십만명이 의심을 품고 이렇게 집단 행동을 벌인 적이 있었던가?
'타진요'의 등장은 타블로 개인의 '학력 논란'을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각시켰다.
일부 연예 매체들만 보도하던 '타블로 사태'은 어느 순간 전국 주요 언론이 비중있게 다루는 '핫 이슈'로 돌변했다.
다수의 매체들은 타진요에서 새로운 주장이 나올때마다 이를 받아쓰기에 급급했고, 수세에 몰린 타블로를 비극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타진요의 주장에 동승, 타블로에게 '진실(?)을 밝히라'는 압력 아닌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개인의 신상 검증을 위해 공권력이 투입됐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과 검찰, 대검찰청 과학수사담당관실 등이 총출동, ▲타블로의 학적 기록과 ▲국적 취득 시기, ▲출입국 일정을 조사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공권력 남용' 및 '세금 낭비'라는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만큼 타블로에 대한 의혹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돼 버렸고 국가 기관이 나서서 해결해야할 만큼 중차대한 일로 변모해 있었다.
-
■ "진짜 거짓말쟁이는 타진요" 전원 유죄 판결
"타블로의 학력이 거짓이라는 허위글을 적시·유포해 타블로에게 위해를 가한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국가 사정기관이 동원돼 벌인 수사 결과, 타블로에 대한 모든 의혹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보내온 원본 서류를 검토한 경찰은 '타블로의 학력에 거짓이 없다'고 보고, 카페 '타진요' 운영자 김모(아이디 왓비컴즈)씨를 비롯 카페(타진요·상진세) 회원 11명을 검찰에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7월 6일 최종 기소된 9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재판부는 이중 8명(타진요 회원)이 이의를 제기해 열린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동일한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논리는 간단 명료했다. '타블로의 학력은 가짜'라는 허위글을 적시·유포해 타블로에게 위해를 가한 피고인들의 죄질이 매우 무겁워 '일벌백계'가 불가피하다는 것.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박관근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12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아토피 환자' 박모씨(집행유예로 감형)를 제외한 7명 전원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0개월의 실형 혹은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했다.
-
■ 아버지가 떠난 '빈 자리'..채워질 수 있을까?
3년여간의 공방으로 만신창이가 된 타블로. 그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근근히 꾸려가던 미용실마저 접었다. 수년간 수입이 없었던 타블로를 대신해 아내 강혜정은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제가 수입이 없을 때 혜정이가 주연도 아닌, 드라마에서 짧게 짧게 나오는 연기까지 하고…, 연극 무대에도 서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그렇게 뛰었어요. 그러다 돈이 들어오면 저한테 선물부터 사주곤 했어요. 어찌보면 혜정이도 더 신나게 연기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난 5일 오후 방송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타블로는 "자신이 학력 의혹 논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을 동안 강혜정이 옆에서 묵묵히 버팀목이 돼 줬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타블로 개인의 명예도 실추됐지만 남편과 가장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히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타블로가 가족에게 느끼는 '마음의 짐'은 극히 무거워 보였다.
특히 아들과 함께 수년간 학력 의혹을 받아온 타블로의 아버지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뇌에 농양이 생겼고, 결국 아들이 오명을 벗는 순간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이했다.
특정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맹목적인 불신은 한 가정을 철저히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다.
법원 판결 이후 모든 의혹에서 벗어난 타블로는 어렵게 재기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
그러나 타블로의 얼굴 뒤에 감춰진 '우울한 그림자'는 그가 예전의 타블로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가 밝힌대로 잃어버린 음악은 다시 활동을 하면 되찾을 수 있지만 '아버지의 일'은 돌이킬 수 없었다. 타블로 부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죽은 사람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는 법.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떠난 '빈 자리'는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 상처로 그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
■ 애정의 고갈이 '불신'을 부른다
'힐링캠프' 방송 이후 '타진요' 일부 회원이 타블로를 맹비난하는 글을 남겼다는 얘기가 들린다. "속시원한 해명은 없고, 불쌍한 척 감성팔이만 했다"는 게 이들 네티즌의 논리.
대체 어떤 증거를 내밀어야 이들이 품은 모든 의문이 풀릴까? 학력 검증을 위해 전국의 언론사가 뛰어들었고 국가 수사기관이 총동원됐다. 재판도 항소심까지 거쳤다. 이같은 검증 절차를 보고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지력(認知力)에 무슨 문제가 있는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듯 싶다.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 끝까지 상고를 제기한 타진요 회원들. 목이 메어 말조차 잇지 못하는 타블로 부부의 모습을 보고도 '조소'를 날리는 네티즌. 이들의 마음 속에 과연 '인정'이라는 게 남아 있을까?
'불신'은 근본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사랑'이 없음을 의미한다. 아끼는 마음이 없으니 의심을 하게 되고, 의심이 커지니 믿음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타블로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메말라 비틀어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애정이 고갈된 사회.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
타진요에 대한 법원 판결은 사건의 종결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대한민국의 치부를 총체적으로 압축하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피눈물을 흘리는 타블로를 보며 '깨어있는 양심'이 좀더 늘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