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가 40여년 전 독일로 떠나오면서 가슴에 담고 와 늘 그리워하던 한국은 이제 제 고국이기도 합니다."

    4일 오전 세계한인차세대대회가 열리는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 전 세계 22개국에서 맹활약하는 20~30대의 성공한 차세대 102명이 모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이 대회에 얼굴 생김이 남다른 참가자 한 명이 눈에 띈다.

    바로 1970년대 초 간호사로 독일에 간 정송자(60) 씨와 독일인 남편 사이에 태어난 한국계 혼혈인 피터 크네히트(28) 씨다. 유창한 영어와 독일어를 구사하며 참가자들과 만나 명함을 교환하는 등 열심히 교류했다.
  • ▲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한 파독 간호사 정송자 씨의 아들 피터 크네히트 씨.
    ▲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한 파독 간호사 정송자 씨의 아들 피터 크네히트 씨.
    크네히트 씨는 '유럽판 MIT(매사추세츠공대)'로 불리는 명문 아헨공과대의 기계공학과를 나와 현재 이 대학이 자랑하는 '공작기계 및 생산공학연구소(WZL)'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서툰 한국말로 `내 외가는 전라도 광주예요'라며 애써 한국인임을 내세웠다. 어머니 정씨와 함께 이미 세 차례나 방한해 외가에서 십여 일씩 머물며 한국문화를 체험한 기억도 털어놓았다.

    광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20대 초반의 앳된 나이에 집안에 도움이 되겠다며 낯선 독일 땅을 밟은 정씨는 지난해까지 서부 라인강변 코블렌츠의 장로교병원에서 근무하다 은퇴했다.

    "대회가 끝나면 바로 광주로 달려갈 거예요. 가서 외삼촌들이랑 놀다가 20일 돌아갈 계획입니다. 전라도는 음식이 정말 풍성하고 맛있어요. 김치와 떡갈비, 여러 가지 나물 반찬들이 입맛에 딱 맞아요. 제 몸에도 어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해요."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내세우긴 하지만 크네히트 씨는 어딘지 모르게 위축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미주지역에 살면서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또래의 참가자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창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현재 WZL에서 자동차 부품 연구를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집중적으로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아예 한국에 들어와 자동차 관련 회사에 다니면서 한국어학당에 등록해 공부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어렸을 때 어머니 무릎에서 한국말을 배웠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현지어를 사용했고 지금은 간신히 몇 개의 한국어 단어만 알아듣고 구사할 수 있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묻자 그는 "뭔가 하나에 집중하고, 끈기 있게 일을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아 내가 한국인이구나.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대답했다.

    유럽 무대에서 뛰는 박지성, 차두리, 손홍민 등 한국 축구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소속 구단을 응원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도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한다.

    크네히트 씨는 최근 독일에서도 인기 절정인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계속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어요. 방송 뉴스도 나오고, 신문 연예면에도 크게 소개되고 있죠. 싸이가 독일을 열광시키고 있어요. 친구들은 내가 한국에 간다니까 `강남스타일' 춤을 제대로 배워오라고 하거나 강남이 어딘지 사진을 찍어 오라고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