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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최유경 기자]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께였다.
약 300여명의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일찌감치 묘역 내부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었으나 박 후보가 발걸음을 떼기가 여의치 않았다.
평소 지지자들을 향해 밝게 웃고 손을 흔들던 모습은 없었다. 굳은 표정의 박 후보는 묘역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며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부엉이바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년 전 몸을 던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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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기 위해 사저로 향하고 있다.위에 보이는 바위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해 서거한 부엉이 바위다. 2012.8.21 ⓒ 연합뉴스
박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봉하마을을 찾았지만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물세례를 받는 등 홍역을 치르자 박 후보는 조문을 포기한 채 발길을 돌렸었다.
3년여 만에 다시 봉하마을을 찾는 박 후보는 노무현재단 관계자의 설명에 따라 하얀 국화 꽃다발로 헌화한 뒤 경례, 묵념 순으로 경건하게 참배를 마쳤다.
부엉이바위를 앞에 두고 너럭바위 아래 잠들어 있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게 묵념을 할 때는 곧은 자세로 일관했다. 묵념이 끝날 때까지는 안내방송에 따라 박 후보의 지지자들과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 모두 입장 표출을 자제한 채 밖에서 바라봤다.
그러나 박 후보가 묘소를 빠져 나오는 와중에 일부 박 후보 지지자들이 저지선을 뚫고 입장, 악수를 요청해 엄숙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박 후보가 도착하기 전 세 차례나 "묘역 분위기를 해치지 말아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으나 요지부동이었다. 급기야 권양숙 여사와 면담을 위해 사저로 이동하던 중 지지자들이 뒤엉키면서 박 후보는 잠시 '휘청'하는 등 아찔한 상황이 연속됐다.
박 후보가 사저로 입장할 때 일부 노사모 회원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있습니까. 여사님 만나면 무릎 꿇고 사죄하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항의하기도 했다. 또한 과거에 박 후보가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들어 "참 나쁜 후보"라는 피켓도 눈에 띠었다.
당초 박 후보가 도착하기 앞서 박 후보 지지자들과 노사모 회원들 간의 충돌도 빚어졌다. 한 노사모 회원이 "인면수심(人面獸心). 환영하지 않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선 게 화근이었다.
이에 박 후보 지지자는 "박 후보는 참배할 자유가 있다"고 맞섰다. 약 10여 분간 이들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각 지지자들이 '서로를 욕보이는 짓'이라고 언성을 낮추면서 마무리 됐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만일 박 후보의 참배가 미리 알려졌더라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수 있다. 당일 (방문계획을) 알린 게 결례가 됐을 수 있지만 오래 전부터 기획했고 후보가 직접 결정한 일이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날 권양숙 여사를 약 20여분간 만나 환담을 나눴다. 권 여사는 사저로 향하는 계단을 절반쯤 내려와 박 후보를 맞았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고 한다. 사랑채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오미자차와 무화과가 올려진 다과상을 앞에 두고 한참을 덕담을 주고 받았다.
특히 박 후보가 자신이 부모님을 잃었을 때 심정을 밝히며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의 충격에 대해 언급하자, 권 여사는 "많은 분들이 봉하마을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또 권 여사는 박 후보의 위치가 지니는 막중한 '책임감'에 대해서 공감하면서 "이 일이 참으로 힘든 일이다. 얼마만큼 힘든지 내가 안다. 건강을 잘 챙기라. 박 후보가 바쁜 일정에도 이렇게 와 주시니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에 박 후보도 "제 꿈은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열심히 잘 해서 이루겠다. 건강 잘 챙기시라"고 화답했다.
이 자리에 함께 배석한 이상일 캠프대변인은 "제가 느끼기에도 (권 여사가) 참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배석한 분을 일일이 소개해 주시고, 처음에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두 분이 손도 잡으셨다"고 덧붙였다.
대선후보로서 첫 외부 공식일정으로 경남 봉하마을을 찾은 박 후보는 앞서 이날 오전에는 서울 동작구의 국립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차례로 돌며 참배했다.
"박 후보의 수락연설 첫 마디가 국민대통합이었다. 보수 중도 진보 이념을 떠나서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다 함께 가겠다는 뜻이었다. 오늘 현충탑 참배하고 방명록에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 받들어 국민대통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적었다. 국민대통합을 반드시 해보겠다는 뜻을 실천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 박근혜 캠프 관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