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 얼음 바다에 빠졌을 때 살아남는 방법은? 남극 세종기지 대장을 지낸 윤호일씨는 이렇게 말한다.

    "얼음 파도를 정면으로 보지 마라. 이게 철칙(鐵則)이다. 대원들은 조난당했을 때 파도 반대 방향으로 몸을 트는 연습을 수없이 한다. 파도가 오면 숨을 참고, 골이 오면 숨을 쉬고. 떠 있기만 하면 남극의 바람이 연안까지 사람을 밀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연습을 해도 얼음 파도를 정면으로 대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얼음 바다를 빨리 탈출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공포에 질려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얼음 파도를 보면 시멘트 콘크리트 반죽이 자기를 향해 밀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이 사람을 패배시킨다. 그러면 단 한방 파도에 목숨을 잃는다."

    아르헨티나 대원이 남극 크레바스(빙하에 생긴 깊은 균열)에 빠졌을 때였다. 조난당한 2명 중 1명이 죽고 1명이 살았다. 특수부대 출신인 생존자에겐 숨진 동료의 식량이 있었고, 통신 장비도 있었다. 크레바스 안에서 최소 이틀 동안 버티면 구조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 7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다.

    구조대가 발견했을 때 그의 팔뚝엔 죽은 동료의 아이젠이 감겨 있었다. 빙벽엔 두 팔과 두 발로 어지럽게 찍은 아이젠 자국이 널려 있었다. 찍으면서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당장 올라가지 못하면 죽는다'는 공포에 휩싸인 생존자는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다가 기력을 잃은 것이다. 윤 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공포가 무서운 것은 일보(一步) 전진을 막기 때문이 아니다. 살 수 있는 현재 조건과 위치까지 갉아먹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 사람은 '현실'과 '진실'을 달리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바다에서 조난당했을 때 얼음 파도가 밀려온다는 현실은 알지만, 파도를 정면으로 대하면 죽는다는 진실은 외면한다. 남극의 냉기가 전해준 공포 탓이다. 크레바스 낭떠러지로 떨어진 순간에는 어둠과 빙벽이라는 현실에 짓눌려 구조를 기다리면 살 수 있다는 진실을 외면한다. 역시 고립이 불러일으킨 공포 탓이다.

    <의도적으로 외면하기(willful blindness)>의 저자 마거릿 헤퍼넌은 사람이 진실을 외면하는 이유를 이렇게 열거했다. 공포·권력·이데올로기·복종·모방·사랑…. 멍청한 사람만 '외면하기'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헤퍼넌에 따르면 앨런 그린스펀 미국 FRB 의장조차 애인(愛人)인 소설가 아인 랜드가 불어넣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취해 위기에 정반대로 대처하다가 리먼 사태를 야기했다. 헤퍼넌은 그린스펀의 정신 상태를 "이데올로기와 사랑이 만든 사이비 종교 수준의 광신(狂信)이었다"고 혹평했다.

    요즘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보면 진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어쩌면 그렇게 두루 갖추고 있나 하는 생각에 절로 감탄한다. 서푼짜리 권력,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 양(羊)가죽 뒤에 감춰진 이데올로기, 전근대적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절대 권력에 대한 복종과 모방, 부부관계로 얽힌 애정(愛情) 요소… 구조가 이러니 '파도가 왔을 때 숨을 참고, 골이 왔을 때 숨을 쉰다'는 진실을 외면한 채 '발버둥치면 버틸 수 있다'는 착각에 욕지거리도 모자라 이젠 폭력까지 휘두르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들은 콘크리트 반죽이 자기를 향해 밀려오는 듯한 공포에 빠질 것이다. 그럴수록 현재의 생존 조건과 위치까지 갉아먹을 것이다. 물론 그럴수록 그들은 더 필사적으로 발버둥칠 것이고, 더 빨리 기력을 소진할 것이다. 그러다 파도 단 한방에 수명을 끝내는 것이 지금까지 세상 모든 사이비 극좌파의 말로(末路)였다.
    (조선일보.2012-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