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살려!“를 조용하게 외칠 수는 없다

     

  •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KBS 시사토론에 4명의 토론자가 나와 탈북자 강제송환에 대해 이야기 했다. 불쾌감을 주고 마음만 상하게 하는 게 TV토론이라 전혀 보지 않다가 이번엔 주제가 주제인 만큼 끝까지 한 번 보았다. 괜찮았다. 필자가 동의할 수 있는 쪽이나 동의할 수 없는 쪽이나 피차 예의를 지키며 차분하게 토론을 진행했다. 동의할 수 없는 쪽도 탈북자 강제송환을 막아야 한다는 원론에선 의견이 같았다. 방법론에서만 달랐을 뿐이다. 

     논점은 방법론에 있어 공개적으로 압박할 것이냐, 조용하게 접근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한 쪽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중국하고 거래할 것이 많으니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며 시간을 두고 조용하게 문제를 제기해 나가자는 주장을 폈다. 시청자 중 한 사람은 “탈북자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북에 식량 지원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 나름의 의사표현일 것이고 그 권리를 존중한다. 그러나 그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다.
     
  • ▲ 크라이 위드 어스' 새터민 학생과 함께 울어주는 강경헌 ⓒ 뉴데일리 ⓒ
    ▲ 크라이 위드 어스' 새터민 학생과 함께 울어주는 강경헌 ⓒ 뉴데일리 ⓒ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이 죽게 됐을 때 “아, 저 사람들 죽겠네! 사람 살려!” 하고 외치는 SOS의 비명이다. 이건 본능이고 자연발생적이며 인지상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 비명을 조용하게 지르라? 어떻게? 이불 쓰고? 
     
     KBS 시사토론이 아니더라도, 비명을 지를수록 탈북자의 처지는 더 나빠진다는 논리도 우리 사회 일각에는 있다. 이걸 일반화 시키면 전 세계의 억압적 정권 하에서 학대받는 수많은 수감자들을 보고도 그들의 처지가 더 나빠질까보아 대놓고 말하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인권운동은 이제부터 일제히 입을 닫아야 할 판인가? 미얀마의 아웅산 수키를 석방하라는 비명도, 중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류샤오보를 석방하라는 비명도 일체 질러선 안 된다는 것인가? 

     떠들어도 당장은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 떠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전 세계의 인도적인 이슈로 의제화(議題化) 해야 한다. 의제화 되지 않고서는 논란이 될 수 없고, 논란이 되지 않고서는 땅속에 깊이 파묻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을 보고도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고려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그  ‘쥐도 새도 모르게’는 영구히, 안심한 채 지속될 것 아닌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은 이 문제가 방법론상의 이견(異見)으로 내려갔다는 점이다. 그 만큼 북한 인권, 탈북자 인권 문제를 더 이상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게 됐다는 이야기다. 처음에 일부는 “남쪽정부 탓으로 북에 관한 정보가 없어 북한 인권 문제는 모른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러나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는 그 동안 의로운 사람들이 한사코 떠들어 준 덕택에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안에 와 있는 탈북자 수가 24000명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일일이 입을 맞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우길 수는 없게 됐다. 우기던 사람들도 그저 막무가내로 “내 배 째라”며 침묵하거나, 그 논리가 아주 궁색해졌다.

     오늘도 사람들을 도살장으로 내모는 중국의 서울주재 대사관 앞에서는 “사람 살려!” 비명이 하늘에 닿고 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 다급한 비명을 대체 어떻게 조용하게 지르라는 것일까.

     
    류근일 본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