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집회, 인권활동가 모습 찾을 수 없어 민주당, 통진당, 박원순 시장...약속이나 한 듯 침묵 국제사회 주요 이슈로 부각, 국내선 냉랭
  • ▲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의 단식으로 시작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집회. 시간이 흐를수록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뉴데일리
    ▲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의 단식으로 시작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집회. 시간이 흐를수록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뉴데일리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근처 경찰 지구대 앞. 처음에 김춘례씨는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인터뷰를 부담스러워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고 나서 그녀는 가슴속 깊이 묻어 놓은 한 서린 이야기들을 1시간 넘게 토해냈다.

    그녀는 두 딸과 아들을 데리고 2003년 6월 한국에 입국했다. 세 번의 탈북시도와 두 번의 강제북송, 중국에서 베트남 다시 캄보디아와 태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기까지 6년. 노예와 같은 중국생활, 인신매매와 납치까지 당해봤다.

    기적같이 두 딸과 아들을 찾아 한국 땅을 밟은 지 이제 8년, 당시 19살이던 아들은 27살이 됐다. 당원이던 남편은 그녀가 북한을 떠난 후 남아있는 어머니와 아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장사를 하다 적발돼 교화소로 끌려가 굶어죽었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5시간이면 오잖아요? 그런데 우리 가족은 6년이 넘게 걸렸어요”

  • ▲ 작년 8월 한 달 넘게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인 탈북여성 김춘례(가명)씨.ⓒ 뉴데일리
    ▲ 작년 8월 한 달 넘게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인 탈북여성 김춘례(가명)씨.ⓒ 뉴데일리

    본지가 작년 8월 2일 직접 인터뷰한 탈북여성 김춘례(가명)씨의 이야기다.

    중국에서 붙잡힌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가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과 스위스 제네바를 넘어 런던 중국대사관 앞에서도 탈북자 강제북송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주한 중국대사관 앞과 광화문 인근에서 보름 가까이 강제북송을 반대 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이 사건에 대한 좌파언론의 관심은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매일 계속되는 촛불문화제와 집회에 관심을 갖는 언론은 이른바 ‘보수’언론 일색이다.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른바 '인권의 파수꾼', '인권의 상징'을 전면에 내세우는 ‘진보’단체들의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과 ‘탈북자 출신 박사 1호’ 이애란 교수가 단식 끝에 실신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원내 제1당 탈환과 정권교체를 꿈꾸는 제1야당 민주통합당은 냉정할 정도로 입을 닫고 있다.

    민통당과 통합진보당 의원 중 탈북자 강제북송에 반대하는 릴레이 1인 단식에 참여한 이들은 아직 없다.

    원내에 탈북자 특위를 구성하자는 일부 최고위원의 요구에 미동도 하지 않던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공사에는 누구보다 강경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옥고를 마다 않았다고 입만 열면 강조하는 한명숙 대표나, 이른바 민주화유공자로 넘쳐나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의원들도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있다.

  • ▲ 작년 8월 한 달 넘게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인 탈북여성 김춘례(가명)씨.ⓒ 뉴데일리

    세계여성의 날을 맞았다고 서울시청 기자실을 찾아 여기자들에게 '여권'을 상징한다며 장미꽃송이를 돌린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아무 말이 없다.

    강정마을엔 온몸으로 공사를 막고 있는 이른바 '환경 활동가'들이 있다. 4대강 건설현장 곳곳에도 생태환경 보호를 위해 '환경활동가'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서울시청과 서울대공원 앞에는 돌고래 복지를 위해 나선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있다. 그러나 주중 한국대사관 앞에는 이른바 '활동가'라는 사람들의 그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히려 일본에서, 미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찾고 있다.

    이중적 잣대를 들고 위선의 가면을 쓴 이들 ‘진보’에게 주중 한국대사관 앞의 집회는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이들에게 강제북송을 앞두고 있는 탈북자들에게는 보호해줄 인권도 없는가 보다.

    ‘진보’의 질식할 것만 같은 외면과 침묵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오싹한 느낌마저 든다.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그들의 속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한 이들에게 탈북자 강제북송은 아킬레스건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들 '엉터리 진보' 진영이 대북포용정책의 덫에 걸렸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인권은 법보다 앞선 천부적 기본권이다. 탈북자의 인권이 여성인권이나 장애인의 인권과 다를 수는 없다. '진보'가 끝까지 탈북자의 인권을 외면한다면 이들은 앞으로 더 이상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

    지율스님은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하면서 “울부짖는 도롱뇽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은 "폭약에 해제되는 구럼비 바위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돌고래가 구럼비 앞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수함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이젠 탈북자의 인권을 외면해선 안 된다. 도롱뇽과 구럼비 바위와 돌고래 보호가 탈북자의 인권보다 앞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도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서울대공원까지 찾아가 ‘제돌이’의 방사를 결정한 박 시장이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제북송 반대시위에 한 마디 언급조차 않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신년사에서 경평축구 부활과 서울시향의 평양공연 방침을 밝힌 박 시장이다. 지자체가 나서서 경색된 대북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다. 얼마 전에는 류우익 통일부장관을 만나 정부의 협조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탈북자 강제북송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진정성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해소하기에 앞서 탈북자 인권보호를 위한 국내외 움직임에 동참부터 하는 것이 순리다.

    한 가지 더 덧붙일 것이 있다. 정치권이든 학계든 또는 시민단체든 탈북자들의 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사(餓死)의 고통은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중국에서의 끔찍한 납치와 인신매매, 노예생활도 글로 옮기기 힘들만큼 비참하다. 특히 탈북여성들의 삶은 아귀지옥이 따로 없다.

    현재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는 최소 5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증 작년 한해 무사히 한국에 입국한 수는 2천7백여명에 불과하다.

    과거 대한민국은 ‘고아 수출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우리가 지금처럼 탈북자 문제를 외면한다면 이보다 더한 치욕을 당할 수밖에 없다.

    박원순 시장은 세계여성의 날에 여기자들에게 장미 꽃송이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 여성들이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인권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마음과 발언이 진심이라면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중인 분들을 찾아 "탈북여성들도 꽂보다도 더 아름다은 인권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위로와 격려와 지지를 표명해야 한다.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앞으로 박 시장의 언행과 정책결정에 진정성과 일관성이 있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박원순 시장님! 장미꽃을 들고 중국대사관 앞을 찾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