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주민들의 비인권적인 삶에 반드시 '제동'을 걸겠다" 경고
  • 지난 2일 탈북자들을 구하기 위해 단식투쟁을 하던 중 탈진으로 쓰러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여전히 “탈북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 나 하나 쯤은 죽어도 좋다”면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든든한 지원군도 생겼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안형환, 이은재 의원이 뜻을 모아 동행길에 나섰다.

    박 의원은 인권이사회에 참석 중인 각국 대표단과 유엔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탈북자 북송의 인권 침해를 온 세계에 고발했다. 한국 의원들이 탈북자 보호를 위해 집단으로 국제회의장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한국의 민간단체 회원이 14일 제네바 유엔 본부 앞 광장에서 여는 ‘강제북송 금지 촉구’ 집회와 거리 행진에도 참여했다. 박선영 의원의 제네바 일정을 <뉴데일리>가 밀착 취재했다. <편집자 주>

    [제네바=김태민 특파원]

    #1. 3월 14일 오전 9:00

  •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국회대표단의 첫 일정은 강경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와의 면담이었다.

    알렉산더 알레이니코프 부대표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면담은 편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런데 두 명 뿐이었다. 우리 측 국회대표단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 두 명만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새누리당 안형환 의원은 앞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출입이 거절돼 면담에 참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강경화 부대표는 "자국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유엔의 오래된 관행이다"라면서도 "박선영 의원의 의로운 행동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지금까지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계속 제기해왔다.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고 더욱 관심을 가지겠다"고 했다.

    알렉산더 부대표는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고 억류과정도 인격적으로 해야한다는 대표단의 의견에 적극 찬성했다. 당연히 강제북송이 금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면담 후 대표단 관계자는 "알렉산더 부대표는 우리 대표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했다"며 유엔이 탈북제 문제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만 알렉산더 부대표는 "중국이 러시아와 달리 북한과 송환협정을 맺어 탈북자에 대한 난민 판단을 자국 정부가 해야 하기 때문에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HCR)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2. 3월 14일 오전 10:30

  • 면담이 모두 끝나고 대표단은 유엔 본부 앞으로 향했다.

    부상으로 깁스를 한 안형환 의원은 북한인권개선모임 등 시민단체 20여명과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 전 의장은 "우리 동포들이 중국 당국에 의해 비인권적으로 잡혀가고 있다. 보편적인 인권이 유린된 탈북자들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국민이란 것이 부끄럽다. 탈북자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그들이 가고 싶은 나라로 갈 수 있도록 끝까지 계속 투쟁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안 의원은 "북한 주민들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내 친구를 살려주세요", "중국 정부는 강제북송을 즉각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유엔난민기구(UNHCR) 본부 앞까지 200m를 행진했다. 박선영 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함께했다.

  • 비록 가두행진에 참여한 인원들은 적었지만 무엇보다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집회에 참석한 한 탈북자는 "북한에는 평생을 수용소에서 살다 죽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더 이상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관심을 기울여야한다"고 했다.

    유엔본부 앞에서 이런 집회나 시위가 벌어지는 것이 정말 드문 일이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신기한 듯 쳐다봤다.

    유엔난민기구로 가두시위를 벌이며 대표단은 우리나라 대표부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회대표단과 우리나라 대표부가 만난 자리에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우리 대표부가 어떻게 노력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표부 관계자는 "외교부에서 '탈북자 문제와 관련된 적극적이고 공식적인 외교적 노력은 자제해달라'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안 의원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판에 그런 공문을 내보낸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외교부가 중국을 너무 의식한다. 우리가 집회하는 것도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중 FTA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을 중국이라고 하지 못하고 인접국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외교부가 그런 공문을 보낸 것은 정말 말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는 중국이 비준하고 서명한 고문방지협약과 난민협약이 국제법의 원칙과 절차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3. 3월 14일 오후 11:40

    중국대표부를 향해 걷기 시작한지 벌써 30여분이 흘렀다.

    박선영 의원은 "중국과 북한 대표부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중국은 대사가 회의가 있다는 이유로 만남을 거절했고, 북한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항의서한을 준비한 배경을 밝혔다.

    항의서한은 '탈북자 강제북송은 유엔난민협약과 유엔고문방지협약 위반이다' 제목으로 "탈북자 강제북송은 곧 죽음이다","탈북자문제는 남북한과 중국의 문제가 아니다. UN의 문제다", "탈북자는 명백히 '난민'이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안형환 의원은 "우리가 대표부 앞에 가는 것은 절대로 시위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가는 것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국대표부로 가는 방향을 알리는 구체적인 표지판이 없었기에 길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먼 곳에 경찰차가 보였고, 공교롭게도 그 덕분에 그곳이 중국대표부로 향하는 길목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표단이 항의서한을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난 뒤 경찰이 배치된 것이다.

    경찰을 보고 대표단은 마스크도 벗었다. 피켓도 모두 감췄다. 괜한 충돌이 빚어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중국대표부가 서한 접수를 거부했고 한국 국회대표단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요청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대표부는 이곳으로부터 몇분을 더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안 의원은 "서한을 받지 않으면 계속 기다리겠다고 중국대표부에 연락하자"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 의원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박선영 의원이 혼자 서한만 전달하고 돌아가겠다고 경찰에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함께 온 스위스 제네바 한인 회장이 서한을 전달하고 오겠다고 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한인 회장은 스위스 시민인데도 불구하고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표단은 중국대표부에 다시 연락을 했고 "관계자 아무나 와서 서한만 받아달라"고 애원을 했다. 이에 중국대표부는 "15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래도 서한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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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의원은 "편의상 15분을 기다려달라고 한 것이지 몇 분을 기다려야 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중국 대표부 관계자는 30여분이 지나서야 걸어 내려왔다.

    중국 관계자가 도착하자 대표단은 "서한을 전달하러 왔다. 한 사람만 갈테니 서한만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몇 분간의 대화가 오고갔으나 끝내 거절당했다. 중국 관계자는 '대신 우편함에 서한을 전달해달라'는 부탁도 단호히 거절했다.

    #4. 3월 14일 오후 12:10

    북한대표부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중국대표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데 북한대표부는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대표단이 "잠시 말을 하자"고 명함을 건넸을 때도 과민 반응을 보였던 북한대표부였다.

    대표단은 그래도 우선 가보자는 생각으로 북한대표부로 향했다. 30여분이 걸려 인근에 도착하자 한인회장은 "여행객인 것처럼 하고 공원 쪽으로 가면 북한대표부로 갈 수 있지 않겠느냐"며 길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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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대표부 앞에 도착하자 예상한 것과는 달리 경찰은 한 명 뿐이었다. 중국대표부 앞에 배치된 경찰들과도 달랐다. 대표단을 친절히 맞이했고 질문에도 성의있게 답하는 모습이었다. 아직 북한대표부가 요청한 경찰이 출동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 경찰은 대표단이 서한을 전달하러 왔다고 하자 "5분만 기다려달라"며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경찰이 더 오게 되면 또 아무 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할 형국이었다.

    이에 대표단은 재빨리 우편함에 서한을 전달했다.

    대표단이 자리를 뜨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경찰이 황급히 북한대표부 쪽으로 오고 있었다. 기자는 잠시 그들을 기다렸다가 북한대표부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겠다고 했다.

    도착한 경찰들은 아니나 다를까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당장 돌아가라"고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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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대표부가 우리나라 대표단의 서한을 읽을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중에서 이러한 각오와 열의를 보인 의원들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김형오, 박선영, 안형환, 이은재 4명이 유일했다. 

    "그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북한 당국의 인권 유린 실태에 눈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북한에 확실히 전달한 것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분명히 목소리는 점차 커질 것이다. 국회대표단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주민들의 비인권적인 삶에 반드시 '제동'을 걸겠다는 경고의 시작으로 봐도 무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