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의원, 귀국 기자회견에 이어 촛불문화제 참석
  • 아름다운 의원’, ‘탈북자의 대모’라 불리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휠체어를 타고 비행길에 나섰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19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 탈북자 북송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지난 2일 탈북자들을 위해 단식투쟁을 하던 중 탈진으로 쓰러진 박 의원은 여전히 “탈북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 나 하나 쯤은 죽어도 좋다”면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든든한 지원군도 생겼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안형환, 이은재 의원이 동행했다.

    박 의원은 인권이사회에 참석 중인 각국 대표단과 유엔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탈북자 북송의 인권 침해를 온 세계에 고발했다. 한국 의원들이 탈북자 보호를 위해 집단으로 국제회의장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 박 의원은 한국의 민간단체 회원이 14일 제네바 유엔 본부 앞 광장에서 여는 ‘강제북송 금지 촉구’ 집회와 거리 행진에도 참여했다. 박선영 의원의 제네바 일정을 <뉴데일리>가 밀착 취재했다. <편집자 주>

    #1. 3월16일 오후 3시30분

  • 스위스 제네바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도착했다. '이제 끝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매고 있는 노란색 스카프가 여전히 눈길을 끌었다. 제네바에서의 첫 일정인 전략회의 때 그는 "우리의 소망과 국민의 염원을 담아 오늘부터 공식일정이 끝날 때까지 매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단식 11일째인 3월 2일 실신, 병원 입원 → 9일 퇴원해 2시 집회 참석 → 10일 스위스 제네바 출국 → 11일 전략회의, 한국대표부 면담 → 12일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참관, 로버트킹ㆍ다루스만 면담, 기자 간담회 → 13일 제네바서밋 참석, 시민단체 행사 참석, 북한인권단체 간담회 → 14일 강경화ㆍ알레이니코프 면담, 국제기구 근무 한인 간담회 → 15일 출국 → 16일 귀국 후 기자회견 및 촛불 문화제 참석 → 17일 ‘탈북자 강제북송반대 걷기대회’ ….

    숨 가쁜 일정들이었다. 몸이 말이 아니었을텐데도 불구하고 박선영 의원은 스위스 제네바에서의 ‘살인적인 일정’을 모두 마쳤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박 의원은 "산모와 아이에게 전달해달라고 한 시민이 부탁한 털모자를 알렉산더 알레이니코프 UNHCR 부대표에 그들의 인적사항과 함께 전달했다”고 했다.

    박 의원은 털모자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지난 7일 직접 손으로 털모자를 뜬 한 시민이 "중국에 억류된 산모와 아이에게 전해달라"며 준 것이었다. 면담을 다니면서도 털모자를 항상 직접 들고다니며 "꼭 전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박 의원이 단식투쟁 할 때부터 취재를 시작,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찾아가 인터뷰를 했고, 그의 스위스 제네바 일정까지 모두 따라다녔다. 스위스에서 돌아오는 이날도 그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탈북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공식 일정 외에도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대화할 시간이 많았지만 대화 주재는 주로 '인권'이었다. 공식 석상에선 진지하고 깊이 있게 '북한 인권'을 이야기했다면, 비공식 석상에선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을 이야기했다.

    박 의원은 출발할 때보다 훨씬 밝은 표정으로 귀국했다. 만족스러운 성과였을 것이다. 마루즈키 다루스만 북한 인권특별보고관과 로버트 킹 미국 대북 인권특사를 비롯해 그와 면담을 나눈 이들 모두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프랑스, 영국, 스위스 대표단 등 20여개 국가가 탈북자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또 한국 국회대표단은 북한대표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살려주세요"

    박 의원이 단식하던 주한 중국대사관 앞을 찾아온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이같이 말했다. 탈북자인 김용하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는 "북한에서 굶어 죽을까봐 나왔는데 중국이 북송시키면 강제처형된다. 제발 좀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은 "도롱뇽을 위해 시위하면서 탈북자 위해선 왜 시위하지 않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평양통일예술단’ 단원들은 중국대사관 앞에서 ‘고향의 꿈’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수많은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이제라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다"면서도 "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한 탈북자 할머니는 박 의원에 "감사하다"며 화분을 주기도 했다.

    지난 4일 열린 북송 반대 콘서트 ‘크라이 위드 어스(Cry with Us)’에는 탈북자 900여명이 찾아 눈물을 흘렸다. 한 탈북자는 “왜 이렇게 늦게 우리가 관심을 받게 됐나. 그동안 섭섭했다”고 했다. 이날 여명학교 학생 30여명은 'PLEASE(제발)'라 적힌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한 학생은 "아무도 우리를 구해줄 사람이, 관심을 둔 사람이 없다는게 가장 무서웠다"고 했다.

  • 제네바 회의에서 북한군 장교 출신의 탈북자 김주일씨는 "북한정권은 탈북난민들을 엄격히 정치적 반동분자로 구분하고 가족까지 포함해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데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조국은 잔인한 독재국가다"라고 말했다.

    또 북한에 3번이나 북송된 김송주 씨는 "북한 보위부원들은 맨손으로 여성들의 생식기에 손을 넣어 가며 숨겨진 돈을 탈취하기까지 한다. 아직도 길에서 경찰 싸이렌 소리가 들리면 중국에서 체포되던 악몽이 되살아나 온 몸이 떨리고 두렵다."며 "북한 주민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고 했다.

    관리소에서 28년을 살다 탈북한 김혜숙 씨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무릎을 꿇리고 두 손을 뒤로 결박한 채 보위원들의 가래침을 받아먹게 했다. 가래침을 삼키지 않은 경우 하루 종일 매질을 당해야 했다."며 "세상에 북한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는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도와줄 게요"

    탈북자들에게 이 한마디를 해주기가 아직도 어렵다. 아예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한 수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양반이다. 

    '침묵하자'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다. 그래야 오히려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나름대로의 근거를 덧붙이기도 한다. 그런 확신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의문이다.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게 해결책이라 훈수 두는 사람들, 국제정세를 들먹이며 일부 사람들은 전쟁하자는거냐며 다그치기까지 한다.

    탈북자들이 그렇게도 증오하는 북한 정권과 '평화적으로 대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동안 대체 우리나라가 언제 비평화적인 협상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대체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 지를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참 잔인하고 냉정하다.

    '쫄지마 씨바'란 구호가 그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비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중국과 북한에 호소할게 아니라 '대한민국'에 먼저 호소해야 할 판이다. 참 안타깝다.

    #2. 3월16일 오후 7시

  • 박선영 의원은 30여년 정도 어린 기자보다도 활기가 넘쳤다.

    인천공항에서 귀국 기자회견이 끝나고 '진짜 끝났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박선영 의원이 오후 7시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루 2번씩 문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가 지난달 21일부터 ‘탈북자 강제북송 저지’를 위해 11일간 단식투쟁을 하다 실신한 곳, 지난 9일 그는 의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병원을 퇴원해 이곳을 찾았었다.

    실신한 날에도 그는 병원에서 "언론인들이 나서 탈북자들을 구해달라"고 메시지를 날렸다.

    이 문제는 박 의원 혼자 짊어지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나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