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의 ‘마지막 수업’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았다. 그의 치세(治世)는 정치적 리더십의 방기(放棄)였다. 대통령 임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안 한 것이다. 거의 오로지 ‘광의의 경제장관’ 노릇만 했다. 대통령의 경제 챙기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대통령은 그 자신과 그에게 표를 준 유권자 및 그의 정치집단 사이에 형성된 공유가치를 펼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가치투쟁, 노선투쟁, 정치투쟁에서 총사령관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걸 그는 안 했다. “난 그런 거 모르고 안 한다”로 일관했다. 직무유기였다. 그런 것 하라고 기껏 뽑아주었는데...

      결과는 지리멸렬이었다. 총수와 기획실이 “글쎄, 날 자꾸 끌어내지 마....”하는 1류 회사를 상상할 수 있는가? PD가 “액션!” “컷!” 하지 않는데 배우들이 연기를 할 수 있는가? “나는 대통령으로서 여기까지는 수용하겠으나 거기서부터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을 긋지 않는데 무리들이 어찌 전선(戰線)을 알아보고 그걸 지키려 하겠는가?

      이래서 마지노선이 뚫려버린 게 오늘의 정치현실이다. 박근혜 씨가 이 부실기업을 인수해 무얼 어떻게 해보려는 참이지만, 요즘 가는 데마다 들리는 소리는 “제3자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유력한 인수자로 꼽히는 측에선 기세가 등등하다. “우리가 인수만 해봐라, 확 뒤집어 버릴 테니...” 국정조사, 청문회, 입법, 정부결정, 기타 등등으로 모조리 다 폐기처분 할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부심을 가지는 4대 강도 가차 없이 청문회에 회부하겠다는 엄포들이다. ‘중도실용’으로 어떻게 살살 달래보려 했지만 돌아올 것은 결국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해온 쪽의 단죄와 응징과 보복뿐일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면돌파’의 승부수를 던질 것 같다는 신문기사가 났다. 기사가 얼마나 정확한 예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돌파’가 됐든 ‘의기소침’이 됐든,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2월에 청와대를 당당한 모습으로 떠나느냐 초라한 모습으로 밀려나느냐의 택일만은 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정면돌파란 타이밍을 놓치면 소용없다. 그러나 타이밍이 늦었어도 본인 선택에 따라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당당함만은 살릴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그렇게 살지 않았다. 막판에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한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프랑스의 알사스 로렌이 독일로 넘어가던 날, 한 시골 초등학교의 ‘마지막 수업’ 풍경을 그린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이 생각난다. 그날 그 동네 프랑스인들은 자존심을 지켰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