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護國佛敎는 죽었는가?
이법철 (대불총 지도법사)護國佛敎(호국불교)는 즉 나라를 수호하는 불교라는 뜻이다.
불교는 본래 나라와 개인의 가정을 떠나 수행하여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위주로 인생을 살기 때문에 政敎分離(정교분리)를 원칙으로 삼아온다. 그러나 불교를 존재하게 하고, 불교를 보호해주는 국가에 대해서는 護國佛敎를 해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불교를 말살하려는 국가에 대해서는 순교로서 위정자와 백성의 回心(회심)을 깨우쳤고, 도저히 안될 때는 불교가 존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고, 불교를 말살하는 위정자와 전쟁을 불사했다. 한국불교는, 불교를 존재하게 하는 왕과 백성들을 위해 興亡盛衰(흥망성쇠)를 함께 하는 護國佛敎가 전통이다.한국불교가 護國佛敎를 실천해온 과거 역사는 불교가 처음 이땅에 전래된 고구려 小獸林王(소수림왕) 때 부터라고 볼 수 있다. 불교를 받아 들이고, 國敎(국교)로 지정하여 온 국민들에게 의무적이다시피 권장하는 당시 최고지도자인 왕은 불교를 통하여 통치를 편리하게 할 수 있고, 불교속에 왕실이 평안을 얻고, 나아가 온 백성이 평안을 얻는 가운데, 王權(왕권)이 金城鐵壁(금성철벽)과 같이 안정되기를 바랐다.
예컨대 신라의 圓光法師는 서기 600년(신라 진평왕 22년)에 중국 隨(수)나라에 불교유학을 갔다가 귀국하여 雲門山(운문산) 嘉瑟寺(가실사)에 주석할 때 신라 땅 沙梁部(사량부)에 사는 청년 貴山(귀산)과 箒項(추항)이 찾아와 정중히 예를 갖추어 두 사람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가르침을 청하자 花郞五戒를 설해 주었다. 事君以忠(사군이충), 事親以孝(사친이효), 交友以信(교유이신), 臨戰無退(임전무퇴), 殺生有擇(살생유택)이다. 圓光法師는 불교와 상관이 없는 가르침을 왜 그 청년들에게 내렸을까?
원광법사는 불교를 존재하게 하고, 흥왕을 위하고, 나아가 신라국의 영원무궁의 발전을 위해 花郞五戒,를 내려 나라와 당시 군왕인 진평왕의 은혜에 보은하는 護國佛敎思想을 보인 것이다. 오계를 받은 두 청년은 602년 백제와의 阿莫城(아막성:지금의 남원군 운봉면) 전투 때, 화랑의 일원으로 臨戰無退(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싸우다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진평왕은 圓光法師의 花郞五戒에 깊은 뜻이 있음을 알고, 감사함을 표하고, 五戒를 전체의 화랑에게 반포하고, 나아가 全軍(전군)과 전 국민사상으로 뇌리에 각인하게 하였다. 수도승 圓光法師는 花郞五戒로서 신라 불교와 진평왕과 국민이 일체가 되는 護國佛敎思想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花郞五戒 사상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의 하나가 된 것은 물론이다.
고려시대에 護國佛敎思想을 온몸으로 실천궁행한 승려는 누구인가? 법명은 전해오지 않지만, 金允侯(김윤후)라는 승려가 있다. 그는 일찍 출가하여 승려가 된 사람이다.
당시 몽골군은 몽고의 명장이요, 용장인 撤禮塔(살례탑)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1차 麗蒙戰爭(여몽전쟁)이다. 撤禮塔은 고려의 40여개의 성을 점령했다. 성주로 몽고 관리 ‘다루가치’를 남겨두고 철수했는 데, 撤禮塔은 계속해서 고려의 내정간섭을 하겠다고 통고해왔다.
몽골은 고려에 막대한 물품과 미모가 출중한 여자들을 조공으로 바칠 것을 요구하며 사사건건 고려를 괴롭혔다. 고려 무신정권의 집권자 崔忠獻(최충헌)이 죽고 그의 아들 崔瑀(최우)가 집권하자 몽고에 대항하여 전쟁할 것을 선포하고 江華(강화)로 천도했다. 이 사실을 안 몽골은 대노했다. 1232년, 몽골은 또다시 撤禮塔을 元帥(원수)로 삼아 고려를 침략했다. 이것이 제2차 麗蒙戰爭이다.
撤禮塔은 수원쪽의 處仁城(처인성)을 공격했다. 그곳에는 주변의 백성들이 몽골군을 피해 들어가 있었고, 그 속에는 김윤후 승려도 있었다. 撤禮塔이 몽고군을 독전하며 전투에 임할 때, 김윤후는 抗蒙(항몽) 전사로서 활을 들어 撤禮塔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김윤후의 화살은 撤禮塔의 목을 관통했다. 撤禮塔은 즉사했다.
총사령관을 잃은 몽고군들은 우왕좌왕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해 이 사실을 보고받은 고려 왕 高宗(고종)은 김윤후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여 일약 上將軍(상장군)으로 임명하려 했다. 이때 김윤후는 자신이 화살로 撤禮塔 죽인 것을 부정하면서 高宗에게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김윤후는 승려로서 사람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요, 功遂身退(공수신퇴)정신, “공을 이루면 물러난다”는 순수한 護國佛敎정신을 보인 것이다.
김윤후의 護國佛敎思想은 李朝, 宣祖(선조) 때 발생한 壬辰倭亂(임진왜난) 때의 수도승들에게서 또 한번 꽃피웠다. 서산대사를 위시하여 그의 제자인 사명대사, 등 많은 승려들이 왜병의 칼날에 죽어가는 백성과 조정을 구하기 위해 조선팔도의 수도승들이 목탁대신, 불경대신, 兵仗器(병장기)를 들고 전선으로 달려갔다.
壬辰倭亂 때 호국, 구국을 위해 죽어간 수도승의 숫자는 3만에 이른다. 倭亂(왜난)이 끝나고 조정에서 論功行賞(논공행상)이 벌어질 때 서산, 사명 등 승장들은 하나같이 功遂身退의 사상으로 조정의 논공행상을 사양하고, 서산대사는 妙香山(묘향산)으로, 사명대사는 伽倻山(가야산)으로 홀홀히 돌아갔다. 불교를 존재하게 하는 나라와 민족에게 護國佛敎를 실천하고 미련없이 산으로 돌아간 것이다.
임진난 때 죽은 義僧兵(의승병)들은 비문에 공적과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한 전투로 적들을 죽였지만, 부처님의 지엄한 불살생계를 범한 것을 천추의 자랑으로 역사에 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컨대 금산에 왜군과 전투하다 순국한 의병들의 무덤을 七百義塚(칠백의총)으로 하여 해마다 기념식을 해오고, 제향을 받드는데, 사실은 의병과 함께 죽은 승병들 8백여명은 스스로 빠져 있는 것이다. 전국 도처에서 순국한 승병들 모두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구상에 불교를 신앙하는 나라의 수도승들 가운데 가장 福受用(복수용)을 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불교국가인 태국의 수도승들은 개인재산 축적과 帶妻僧(대처승), 隱妻子僧(은처자승)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하루 식사를 탁발로서 끼니를 때우고, 오직 수행할 뿐이다. 중국불교는 어떤가? 유서깊은 사찰은 공산당 소유가 되었고, 사찰에 기거하는 수도승들은 하루 식사만 제공받고, 도량청소하며 수행할 뿐이다.
일본불교는 어떤가? 수도승 대부분이 당연히 결혼하게 되어 있고, 사찰의 주지직은 모두 世襲制(세습제)이다. 아버지가 주지직에 있었으면 그 아들이 주지직을 계승하고, 세습할 아들이 없으면, 딸이, 또는 사위가 세습하여 주지직을 할 뿐이다. 대한민국 처럼 아무나 예컨대 총무원장이 되고, ‘봉은사’ 주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세계의 불교 가운데 유독 복많은 불교 종단은 대한불교 조계종이다. 학벌도 필요없다. 9급 공무원 시험치는 것도 아니다. 인사권을 갖고 있는 정치승에게 줄을 서거나, 돈을 쓰거나, 대통령 영부인의 치마 바람이 있으면, 하루아침에 천문학적 시주금이 쏟아지는, 예컨대 강남 ‘봉은사’ 등의 주지직을 해먹을 수 있는 것이다. 총무원에서 지정하는 소정의 분담금을 내놓고는 주지기 알아서 비밀리에 수입을 챙기는 것이니 猝富(졸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어찌 猝富 뿐인가? 隱妻子僧(은처자승) 이면서 청정 비구 행세를 하는 자도 부지기수이다. 薄俸(박봉)으로 어렵살이 부모와 처자를 책임지는 대다수 월급장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福受用을 하는 것이 일부 수도승들인 것이다.
그런데, 猝富의 수도승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종교자유를 보장해주는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다. 猝富 수도승들은 누구보다 대한민국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護國佛敎思想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대한민국을 망치는 종북 좌파노릇을 자처하면서 북한 세습독재자에게는 충성하고, 대한민국을 망치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장차 한국불교의 亡兆(망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왜 종북 좌파 수도승들이 득세했는가?
YS, DJ, 노무현 15년 세월에 민주화라는 미명으로 불교계에는 종북 좌파 수도승들이 전염병같이 창궐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지원으로 불교계의 지휘부를 장악한 좌파 수도승들에 대한 청소 개혁은, 보수 우익의 정치권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는 癌(암)같이 되어 버렸다.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신라, 교려, 이조를 통해서 연면히 계승되어온 護國佛敎는 정녕 죽었는가?
이제 대한민국의 종북 척결은 보수 우익의 도도한 민심에 호소할 수 밖에 없다. 종북 좌파 수도승들은 오는 총선, 대선에서 좌파 정당의 압승을 위해 불교계를 이용, 광분할 것이다. 월남 패망을 촉구한 승려들을 닮으려는 좌파 승려들의 난장판, 대한민국의 護國佛敎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가?
죽은 줄도 모르고, 나홀로 護國佛敎를 실천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인가?李法徹 (bubchul@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