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保守主義 운동의 진지를 구축하자!  
      
     2012년 정세는 그리 밝지 못하다. 저들의 거센 공세가 예상된다. 우리는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황성준 /미래한국 편집위원 
        
    -니콜 호프린, 론 로빈슨 共著 <펀딩의 아버지들 - 보수주의 운동의 숨겨진 영웅들>을 읽고-

  • 1980년대 중반 한 운동권이 ‘양산박’이란 학사주점을 차린 적이 있었다. 운동권 사랑방 공간을 마련함과 동시에 운동(혹은 생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문을 열자마자 이 술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각종 조직 및 공안사건으로 형을 마치고 나온 운동권 선후배들이 대거 몰려들었던 것이다. 약속 없이 가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며, 또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항상 붐볐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떼돈을 버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개점한 지 몇 달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호기 있게 술을 마시는 호걸들은 많아도, 돈을 내고 가는 영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 ‘양산박 비적’들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 구절이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였다. 사실 당시 상황은 좌익들 입장에서 볼 때 참담 그 자체였다. 소리는 검거 소식뿐이었니…

    한숨과 패배주의적 자괴감

    요즘 많은 보수인사들이 한숨을 입에 달고 다닌다.
    ‘안철수 현상’과 ‘나꼼수 신드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경악해 한다.
    심지어 “이대로 가면 전멸이야”라는 패배주의적 자괴감마저 나오고 있다. 또 “‘보수의 실패’가 아니라, ‘MB 혹은 한나라당의 실패’일 뿐이야”라고 자기 위안을 해 보기도 하지만, 현재의 전선 붕괴 상황에서 ‘보수진영’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읽은 <펀딩의 아버지들>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펀딩의 아버지들>이란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란 단어에 빗대서 만든 말로서 <보수주의 운동의 숨겨진 영웅들>이란 부제에서 보여주듯, 음지에서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성공을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필자가 처음 이 책을 선택했을 때에는 단순히 ‘재정 후원자’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펀딩의 아버지들’은 단순히 돈을 내거나 모금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전’을 가진 ‘운동가들’이었다.

    ‘펀딩의 아버지들’은 뉴딜 이후 미국 사회,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젊은 지식층이 좌익의 지적 헤게모니에 의해 포섭, 장악돼 나가는 모습에 주목했다. 명문대학 경제학과에서 자유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판하는 것이 대세가 되고, 기독교 재단이 후원한 대학에서 ‘전투적 무신론’이 유행하고, 종교적 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미개한 사람들의 일인 것처럼 치부하는 ‘겉멋’이 지배하는 현실이 지속되는 한, 미국 사회의 앞날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펀딩의 아버지들’은 젊은이들의 ‘두뇌와 심장’을 사로잡기 위한
    ‘이념 전쟁’(war of idea)을 시작한 것이다.

    윌리엄 볼커(William Volker)는 자수성가한 사업가 출신으로 자선사업에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이 과정에서 ‘세금을 통한 자선’은 물질적 측면에서 복지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복지 혜택자이 ‘인간으로서의 자주성’을 박탈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 중의 하나가 ‘이념’(idea)라고 판단하고, 이러한 이념 전쟁을 치를 참모본부 구축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사업의 하나로 진행된 것이 ‘몽페를린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ity)의 후원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는 하이에크, 미제스, 밀턴 프리드만 등 자유주의 경제학 대가들이 집결한 ‘지식의 산실’이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자유주의 경제학이 국가 개입주의 경제학을 극복하고 주류로 재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볼커는 ‘볼커 재단’을 만들어 ‘몽페를린 소사이어티’ 자체뿐만 아니라 학자들을 개별적으로 재정 지원하며 또 이들이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도록 했다.

    대학에 후원금을 줄 때, 조건으로 이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강의를 보장하도록 했던 것이다. 하이에크와 미제스가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볼커 재단’의 후원 덕분이었다.

    헨리 레그너리(Henry Regnerty)는 보수주의 출판가이다. 그는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좌익 혹은 좌익 리버럴 경향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보수주의 책 출판에 나섰다. 좌익은 책을 출판해 줄 출판사를 찾기 쉬우나, 보수주의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것이다. 레그너리는 “책만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디선가 시작해야 했다. 책은 주요한 수단의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美 보수주의 운동의 대부 윌리엄 버클리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대부’인 윌리엄 버클리(William F. Buckley Jr)는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란 잡지(미래한국 처럼 초기에는 주간지였으나 격주간지로 전환됨)를 만들어 보수논객들의 발표장임과 동시에 보수이념을 결집시키고 전파시키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요새’를 구축했다.

    버클리는 보수주의 학생운동 성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단순히 이념적 자양분만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보수주의 학생운동가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진로문제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훈련된 보수주의 학생들을 대학, 언론, 정부, 의회 등 주요 자리로 진출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 밖에 ‘매니언 포럼’이란 보수주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한 클래런스 매니언, 헤리티지 재단을 후원한 조셉 쿠어스 시니어(Joseph Coors Sr.) 등의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무엇을 해야 하냐? 너무도 할 일이 많다.

    보수주의 학자들을 결집시키고, 이들이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보수주의 책을 번역·저술·출판하는 일, 보수주의 운동의 선전가이자 조직가 역할을 담당할 한국판 <내셔널 리뷰>를 만들어 내는 일, 젊은 보수를 양성하고, 이들의 진로를 확보해 주는 일 등등.

    2012년 정세는 그리 밝지 못하다. 저들의 거센 공세가 예상된다.
    우리는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토치카를 만들고 교통호를 파야 한다. 아니 개인호라도 파야 한다.
    그래야 전선을 지킬 수 있으며 설령 전선이 돌파된다 하더라도 ‘장기적 저항’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성준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위 칼럼의 출처는 <미래한국> 입니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