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시설-복지관-재래시장 등 찾아 “낮게, 더 낮게”“대통령이다” 반기다가 “정치인들이 다…” 불신 커
  • ▲ 14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정영석 부산 동구청장 후보가 자성대 노인복지관을 방문, 노인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14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정영석 부산 동구청장 후보가 자성대 노인복지관을 방문, 노인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최유경 기자] 이른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정오에 이르자 굵은 소나기로 바뀌었다.

    맹렬한 빗줄기에도 14일 오전 부산 동구의 한 노인복지관에는 서울에서 내려간 취재진과 지역 매체, 주민들이 뒤엉켜 한바탕 북새통을 이뤘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2007년 대선 이후, 4년여만의 선거 지원에 나선 그를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유력 대권후보가 동구를 찾았으니 정영석 후보가 꼭 당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구청장 자리를 내준 뼈아픈 과거가 떠올랐는지 무소속 후보가 박 전 대표를 등에 업으려는, ‘박근혜 선전’을 경계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복지관 입구에는 한 무소속 후보가 박 전 대표와 찍은 사진을 선거도구로 제작,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선거전에 써먹고 있었다.

    박 전 대표보다 먼저 도착한 정의화 부의장이 “한나라당 후보를 홍보해야지 왜…”라고 말하자 상대측 운동원들은 “당선시켜서 한나라당 들어가겠다”고 생글생글 웃으며 답했다.

    여당 지지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무소속이 당선돼서 어떻게 됐는지 보지 않았느냐. 행정도 모르고, 엉망이었다. 저렇게 어르신들께 홍보를 하니 진짜 박근혜 전 대표가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는 줄 아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은 정오가 다 돼서야 복지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쏟아진 빗줄기에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연착한 까닭이었다.

    박 전 대표는 복지관에서 일정을 마치고 인근 수정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는 일찍부터 박 전 대표의 방문을 알고 있었는지 상인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왔다”는 환호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한 상인은 “저희 어머니도 육씨다. 꼭 한번 뵙고 싶었다”며 박 전 대표의 양 손을 부여잡았다. 이에 반대편에서는 “이쪽도 봐 달라”며 악수 요청이 잇따랐다. 차기 대권 선두 주자다운 인기였다.

    부산 민심이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물가 상승, 경제 침체 그리고 부산저축은행 등 잇따른 악재에 한나라당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음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 ▲ 14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정영석 부산 동구청장 후보가 자성대 노인복지관을 방문, 노인들의 건의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 14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정영석 부산 동구청장 후보가 자성대 노인복지관을 방문, 노인들의 건의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전 대표가 수정시장 내의 한 식당에서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고 있는 동안 그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옥주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10여명의 피해자들은 “대권 주자라면 부산 저축은행에 대해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한다”고 목청이 터질 듯 외쳤다.

    이들은 “부산에 왔으면 저축은행부터 와야지 권력형 비리인거 모르느냐”고 관심을 호소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비공개 일정으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저축은행 대주주의 은닉재산을 반드시 찾아내고 대출자산도 철저하게 파악해 자금회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차원의 노력도 약속했다.

    재래시장에서도 ‘정치불신’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재래시장이 경기의 바로미터”라며 바닥민심을 살피는 박 전 대표를 두고 “정치인들이 여기를 왜 오냐. 장사도 안 되는데 돌아다니기만 하면 뭐하냐”고 불만을 표출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한 상인은 “누가 구청장이 되든지, 대통령이 되든지 살림살이가 크게 좋아지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들 자기들 좋자고 정치하는 것 아니냐”며 강한 불신을 내보였다.

    이날 시장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많은 양의 비가 내린 탓인지 소비자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예 문을 닫은 상점도 보였다.

    상인들의 한숨에 빗물을 머금은 시장 천막이 왈칵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