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언문철자법 아닌 훈민정음 창제당시 표기 따라야
  • 정부가 앞서 전통공법 사기사건으로 폐기된 국새(國璽) 대신 제5대 국새를 제작하고 있는 가운데 인문(印文) 표기의 적정성 논란이 제기됐다.

  • 14일 학계 일각에선 새 국새가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과 동국정음(東國正音) 등 창제당시 표기법을 적용토록 규정한 현행 국새관계 규정(대통령령 제22508호)을 어기고, 일제강점기 일부 학자의 주도로 채택된 ‘언문(諺文) 철자법’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해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국새를 만드는데 훈민정음 창제당시 표기법을 놔두고 굳이 조선총독부가 제정, 공포한 철자법을 따라야 되겠느냐”며 인문의 철자를 ‘대, 한, 민, 국’에서 창제 때 표기법인 ‘·땡(大), ㅎ한(韓), 민(民), 귁(國)’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이어 한글 창제당시 동국정운 표기법을 따르면 ‘한’은 중국을 의미하는 ‘한(漢)’이지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韓)’이 아니며,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기인 3대부터 5대 국새에 이르기까지 인문이 모두 우리나라(韓)가 아닌 중국(漢)으로 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언문철자법 때문에 훈민정음 창제기 글자체인 ‘·땡(大), ㅎ한(韓), 민(民), 귁(國)’을 ‘대한민국’으로 읽을 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1930년 2월 언문철자법을 공포, 된소리(경음:硬音)로 읽히던 ‘ᄭ, ᄯ, ᄲ, ᄶ’을 각각 ‘ㄲ, ㄸ, ㅃ, ㅆ, ㅉ’으로 쓰도록 강제했는데 긴소리(장음:長音)인 ‘대∼’로 읽어야 할 ‘·땡(大)’자를 종(鐘) 칠 때 나는 의성어 ‘땡’과 같이 읽히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당시 표기법에 따르면 받침 ‘ㅇ’은 발음되지 않는 묵음(默音)으로 목구멍소리(후음:喉音)가 아니며, 1446년 창제된 ‘훈민정음(訓民正音, 국보70호)’과 이듬해 완성된 ‘동국정운(東國正韻, 국보71∙142호)’을 보면 당시 ‘ㄸ’, ‘ᅘ’ 등은 현재처럼 된소리로 발음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1459년(세조5년)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에 실린 훈민정음 서문도 ‘솅종엉젱…(世宗御制…)’으로 사용됐고 ‘종(宗)’에서 받침 ‘ㆁ’의 경우 목구멍소리로 발음이 나온다.

    이와 관련, 박 소장은 “‘대한민국’ 가운데 ‘대한민’까지의 발음은 600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표기법이 달라지다보니 ‘땡한민국’으로 읽는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 벌이지고 있다”며 “총독부 언문철자법은 당시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라고도 언급했다.

    실제로 1934년 윤치호·최남선·지석영 등 지식인 112명은 ‘正音지’ 제5호에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 일제의 언문철자법이 성포될 당시엔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이전이었고 해례본의 경우 지난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바 있다.

    다만 박 소장은 국새규정의 위반논란과 관련해 “지금 와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대로 어문규정을 고치자는 주장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새롭게 제작되는 국새만이라도 ‘국새규정’이 정하고 있는 역사 및 정통성 등을 감안, 훈민정음 창제 당시대로 하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앞서 그는 ‘국새의 인문은 대한민국 네 글자로 하되,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당시의 자체로 한다’는 규정에 맞춰 새 국새는 ‘·땡(大), ㅎ한(韓), 민(民), 귁(國)’으로 새겨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박 소장은 특히 우리나라를 의미해야 하는 ‘한’이 창제 당시엔 중국인 ‘한(漢)’을 지칭하던 표기법이기 때문에 자칫 중국 ‘한(漢)나라’의 국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키도 했다.

    그러나 새 국새 제작을 맡고 있는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국새규정은 훈민정음 창제당시의 글꼴을 활용해 ‘대한민국’을 표기한다는 의미”이라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글자를 그대로 표기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박 소장의 지적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행안부는 또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표기법)을 국새인문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조선총독부(가 선포한 언문철자법)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일각에선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엄중한 국새가 관계규정이 정하고 있는 대로 훈민정음 당시 표기법을 따르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학계 인사는 “국새가 갖고 있는 국가적 상징성이란 무게를 감안할 때 인문의 표기법에 대한 고려가 선행됐어야 했다”며 “현재 사용되는 철자 ‘대, 한, 민, 국’을 새기는 것보다 ‘·땡(大), ㅎ한(韓), 민(民), 귁(國)’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 ▲ 대통령령 제22508호 등 현행 국새 관계규정은 훈민정음 창제당시 표기법에 따라야 하지만 3대부터 5대까지 국새는 모두 잘못된 표기법을 따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뉴데일리 편집국
    ▲ 대통령령 제22508호 등 현행 국새 관계규정은 훈민정음 창제당시 표기법에 따라야 하지만 3대부터 5대까지 국새는 모두 잘못된 표기법을 따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뉴데일리 편집국

    한편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갑골문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지고 있으며 작년 6월 신라 화랑들의 맹세를 적은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보물1411호)’이 한국어식 한문표기가 아니라는 내용을 학회지에 발표해 한글·한문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