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과정은 한국의 대(對) 의회외교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한미 FTA 비준외교는 역대 대미(對美) 외교 의제중 단일 사안으로 미 의회를 움직이기 위해 가장 광범위하고도 조직적, 체계적으로 펼친 대 의회 외교 활동이었다.

    2000년대 들어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가입,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과 촉구 결의안 채택 운동이 펼쳐질 때 의회를 상대로 한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초보적인 단계의 친한(親韓)파 의원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성과가 있었지만, 이번 한미 FTA는 정부와 업계, 미국내 한인 `풀뿌리'(grass root) 운동이 결합된 전방위 외교였다.

    지난 2007년 6월30일 양국 행정부가 한미 FTA 협정에 서명했지만 그 이후 미국내 FTA 비준을 위한 정치적 환경은 불리하게 움직였다.

    조지 부시 행정부 말기에는 무역협정에 부정적인 민주당이 장악한 미 의회가 움직이지 않았고, 2009년초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FTA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지지 조직인 노조세력도 반(反) FTA 흐름이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후 FTA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주미대사관은 행정부가 움직이도록 하면서 의회내 FTA 우호세력을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데 역량을 쏟아부었다.

    의원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의회내 친(親) FTA 의원을 조직화하고, 중도 성향 및 반(反) FTA 의원들을 설득하는 활동을 펼쳤다. 동시에 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역구의 업계와 한인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작업을 병행했다.

    그 성과물로 지난해 6월 하원에 초당적 조직으로 `한미FTA 워킹 그룹', 5월에 '친무역 코커스'가 결성됐다.

    `한미FTA 워킹 그룹' 의원들은 무역협정에 회의적인 의원들로 구성된 반(反) FTA 성향의 `하원 무역 워킹그룹'(The House Trade Working Group)의 조직적 활동에 대응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FTA 열기를 높였다.

    한덕수 주미대사는 비준에 이르기까지 민주, 공화당 지도부를 포함해 지금까지 245명의 상·하원 의원과 모두 488회 면담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의원들까지 접촉하면서 입장을 바꾸도록 하거나 최소한 중립화하는 노력을 벌였다.

    의원 설득 과정에는 워싱턴의 전문 로비, 컨설팅 회사도 큰 역할을 했다.

    미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지난 5년간 한미 FTA 비준을 위한 미 의회 로비, 컨설팅, 홍보 전문회사와 630만달러(약 74억원)의 계약을 맺었다.

    유력 로비 회사인 애킨 검프 스트라우스 하우어 앤 펠트, 피어스 이사코비츠 앤 블라록 등은 의회내 전문화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상·하원 전체 535명 의원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해 대사관에 보고하고 수시로 대응전략을 만드는 과정을 밟았다.

    특히 의원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표'와 `정치자금'을 찾아 지역구를 파고들었다. 주미대사관은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31개주 57개 도시의 의원 지역구를 찾아 현지 여론을 우호적으로 조성하는 `아웃리치'(outreach) 활동을 전개했다.

    `워싱턴 정치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의회를 움직이는 힘을 지역구에서 찾고 지역구 여론을 두드리는 활동을 펼친 것은 의회외교의 진일보한 형태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인 유권자 `풀뿌리' 운동과 결합된 것도 동력 극대화에 기여했다.

    한인 유권자가 많은 지역구의 경우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의 조직화된 힘을 통해 의원들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0월 `온라인 행동 센터'를 개설해 한인 유권자들이 손쉽게 의원들에게 한미 FTA 지지 서한을 발송하도록 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지역구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업계도 공동으로 의회에 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대(對) 의회 유권자 운동을 조직화해온 뉴욕 한인 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12일(현지시간) "한미 FTA의 미 의회 통과는 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집요한 반(反) FTA 세력의 로비를 뚫고 워싱턴 중앙 무대와 지역 여론을 동시에 공략하는 입체적 활동을 통해 이뤄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관계가 갈수록 다면화되고 미 의회에 올라가는 한국 의제들이 갈수록 많아질 것인만큼 앞으로도 의회 외교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스라엘, 중국, 일본 등과 비교할 때 `걸음마' 단계였던 대(對) 의회 외교력이 한미 FTA 외교를 통해 강화된 만큼 이 발판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