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첩자에게 망한 백제 
      
    북한첩자에게 노출된 한국

    고성혁(디펜스 타임즈 편집위원)

      
    삼국사기엔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의자왕 19년(659) 봄 2월에 여러 마리의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上佐平)의 책상[書案] 위에 앉았다.
     
    여름 4월에 태자궁의 암탉이 참새와 교미했다. 장수를 보내 신라의 독산성(獨山城)과 동잠성(桐岑城)의 두 성을 쳤다. 5월에 서울[王都] 서남쪽의 사비하(泗河)에 큰 물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세 장(丈)이었다. 가을 8월에 여자의 시체가 생초진(生草津)에 떠올랐는데 길이가 18자이었다. 9월에 궁중의 홰나무[槐樹]가 울었는데 사람이 곡하는 소리 같았다. 밤에는 귀신이 궁궐 남쪽 길에서 울었다.』
     
    내용만 봐도 을시년스럽다. 그만큼 백제 말엽 민심이 흉흉했슴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흰 여우가 사비궁 안에 들어가 상좌평 위에 앉았다』는 부분이다. ‘상좌평’이라고 하는 관직은 지금으로 치자면 국무총리자리 같은 자리다. 조선시대로 말한다면 ‘1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자리에 해당하는 것이 백제의 상좌평이라는 관직이다. 전통적으로 여우는 요물로 우리에겐 인식되어 있다. 즉, 매우 교활한 인물이 최고 관직인 상좌평에 앉았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여우같은 인물이 상좌평자리에 올랐으니 백제의 정치상황과 민심이 흉흉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우가 상좌평자리에 앉았다고 하는 이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기록이 있다. 바로 삼국사기 열전편의 김유신전(傳)에서이다. 김유신 장군이 얼마나 치밀하게 첩자를 이용하여 백제를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하였는지가 매우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이렇다. 조미곤(租未坤)은 태종무열왕 때 급찬(級湌)으로 천산현령(天山縣令)을 지내다가 백제의 포로가 되어 좌평(佐平) 임자(任子)의 종으로 일하고 있었다. 부지런히 일해서 임자의 신임을 얻었다. 백제 좌평(佐平) 임자(任子)는 조미곤의 성실함을 보고 조미곤에게 자유롭게 외부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자 조미곤은 신라로 탈출하여 자신의 상황과 백제의 실정을 김유신(金庾信)에게 소상히 말했다.
      
    조미곤의 이야기를 다 들은 김유신은 조미곤을 일종의 고정간첩으로 이용할 작전을 구상했다. 그리고 김유신장군과 조미곤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조미곤 당신의 충성심에 나 유신은 너무도 감동했소이다. 신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하니 한번 더 당신의 힘을 빌리고자 하오이다”
     
    “장군님. 이미 죽고자 각오한 마당에 뭔들 못하겠사옵니까? 장군님의 뜻을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이렇게 해주시오. 미안하지만 다시 백제로 돌아가서 임자에게 이렇게 전해주시오”
    “어떻게 말입니까?”
     
    “나 유신이 백제 좌평 임자와 만나서 상의할 수 있다면 신라와 백제간에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수 있을텐데 그것을 못해서 안타깝다고 전해 주시오.”
    “장군님. 그렇게만 전하면 되겠사옵니까?”
      
    그러자 김유신은 조미곤을 가깝게 오라고 하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신라가 백제에게 망하면 나 김유신을 임자가 보호해주고, 만약 백제가 망하면 임자의 신변은 나 김유신이가 절대적으로 보호하겠다고 말해라. 그러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이말을 듣자 조미곤은 대번에 그 뜻이 뭔지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바로 조미곤은 또다시 백제로 돌아가서 임자에게 말했다.
      
    “제가 기왕 (백제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 나라의 풍습을 알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십 일 동안 다니면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개와 말이 주인을 그리는 정성을 억제할 수 없어서 이렇게 돌아 왔습니다.” 임자는 그 말을 믿고 책망하지 않았다.
      
    임자의 태도를 파악한 조미곤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번에는 죄를 받을까 두려워서 감히 바른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신라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김유신장군이 전하라고 하면서 저에게 ‘나라의 흥망은 미리 알 수가 없으니, 만일 그대의 나라(백제)가 망하면 그대는 우리나라(신라)에 의탁하고, 우리나라(신라)가 망하면 내가 그대의 나라(백제)에 의탁하기로 하자’고 말하였습니다.” 임자는 이 말을 듣고 묵묵히 말이 없었다.
      
    사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런 적과 내통한 조미곤은 간첩죄로 처벌했어야 했다. 그러나 백제의 내정책임자 좌평인 임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삼국사기엔 그 다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조미곤은 황송스러워하며 물러나와 여러 달 동안 처벌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임자가 불러서 물었다. 
    “네가 지난번에 이야기한 유신의 말이 어떤 것인가?”
    조미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지난번에 말한 것과 똑같이 대답하였다. 임자가 말했다.
    “네가 전한 말을 내가 이미 잘 알았으니 돌아가서 알려라.”
    그러자 조미곤은 드디어 신라로 돌아와서 백제좌평 임자의 말을 김유신장군에게 전하였다. 이렇게 백제 최고책임자중 한사람을 포섭한 김유신은 그 후 적극적으로 백제공략의 계획을 세웟다.
      
    이렇게 되자 백제 내부에선 백제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충신들의 목소리는 신라에 포섭된 좌평 임자에 의해서 철저히 차단되었다. 그 와중에 백제 의자왕은 나이가 들어서 실제적인 정치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것을 이용해서 왕자들은 좌평자리를 독차지하게 되자 백제의 귀족과 왕족간에는 싯을 수 없는 알력이 커져갔다. 그래도 충신은 있는 법이었다. 그 충신이 성충과 흥수였다. 백제를 위해서 바른말을 하는 성충과 흥수는 신라와 내통하고 있던 임자에겐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성충이 죽으면서도 백제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한 말이다.
     
    “필시 신라와 당이 연합해서 백제를 공격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바다로는 기벌포에 닿지 못하게 하시고 육상에선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면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이런 성충의 말은 평화로운 시대를 어지럽히는 말로 매도되어 버렸다.
     
    신라는 드디어 백제 공략에 나섰다. 그 중 충신파는 백제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신라의 보기 드문 대병력이 이동한다 하옵니다. 좌평 성충과 흥수가 말한데로 만약을 대비하여 설사 신라가 우리 백제를 공격한다 하더라도 탄현(현재 대전과 옥천을 연결하는 고개)에 진을 치고 있으면 능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이러자 신라첩자에 포섭된 좌평 '임자'가 는 맞받아 쳤다.
     
    "왜 나라를 소란스럽게 하려 그러는 것이요? 신라가 우리 백제를 공격한다는 증거가 있단 말이요? 이렇게 군사이동하는 것이 어디 한두번 있었던 일이란 말이요? 그리고 우리 백제를 공격한다면 지금 공격하지 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단 말이요? 이건 우리 백제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고 고구려에 대항하려는 신라의 속셈이지 백제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니까 너무 호들갑 떨지 마시요" 
    “허허. 그러다가 만약 신라가 백제를 공격한다면 대책이 있소이까?”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백제 내부에서는 입씨름만 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면 백제의 군사력을 뭘로 보십니까?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해서 김춘추의 딸과 사위의 목을 베고 40여 성을 빼앗은 것은 백제군이 아니고 어디란 말이오? 우리 막강한 백제군이 저 신라군에게 지기라도 한단 말이오?” 
    “이 보시오 좌평 임자. 첩보에 의하면 신라가 당나라하고 손을 잡는다 하지 않소? 신라만이라면 우리 백제군이 막을수 있다지만 당나라군하고 손잡은 신라군은 다르지 않소이까?”
      
    “당나라군이라고 했소이까? 허허. 당나라군이 고구려에게 패해서 도망간 것은 모르오이까? 당나라군이 우리 백제를 공격하려면 고구려를 지나와야 하는데 고구려가 가만있는단 말이오? 그렇다고 저 험한 바다를 건너오기라도 한단 말이오? 괜시리 평화로운때 전쟁이라는 말로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지 마시요” 
     
    결과는 역사가 증명하였다.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백만의 적군보다 내부의 세작 한명이 더 무서운 것이다. 신라에 포섭된 첩자의 공작질의 핵심은 "위협"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적을 적으로 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패망의 지름길이다. 백제는 그렇게 망했다.
     
    그런데 백제의 그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적인 김정일을 김정일위원장이라고 깍듯하게 부르고 오히려 대한민국 대통령은 온갖 비속어로 폄훼하고 있다. 지금 현재도 제주해군기지건설을 좌익들은 수단방법을 가지리 않고 방해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핵폭탄 보유는 북한의 자위권이라고 두둔하고 반대로 우리해군의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전쟁준비라고 반대하는 좌익세력이 대한민국에서 거대집단으로 커져버렸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멸망한 백제의 모습과 하등 다를바 없다.
      
    “북한은 핵을 가질 능력도 기술도 의지도 없다. 내가 책임진다”고 하던 전직 대통령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서 맴돈다.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