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전력 400만kw 확보 못하자 매뉴얼에 따라 순환 정전전력거래소, 한전 등 "오후 8시 되면 정상공급 가능" 전망
  • 15일 오후 3시 30분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지경부와 한국전력 등 관계 기관은 "늦더위에 전력 수요가 일시적으로 몰리면서 전국에서 정전이 발생했다"고 해명했지만 관계 기관이 전력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감독 당국인 지식경제부(장관 최중경)가 여름 무더위와 겨울 전열기 사용에만 신경을 쓴 채 늦더위에 따른 전력 수요를 과소평가한 채 '정비' 명목으로 발전소 가동을 많이 멈춘 사실이 드러나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 ▲ 대규모 정전으로 신호등마저 꺼지면서 교통혼잡이 일어나기도 했다.[사진:연합뉴스]
    ▲ 대규모 정전으로 신호등마저 꺼지면서 교통혼잡이 일어나기도 했다.[사진:연합뉴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에 따르면 15일 오후 서울 강남, 송파, 서초, 영등포, 종로구 등 서울시내에서 시작된 정전은 분당, 일산, 인천 등 수도권으로 퍼진 데 이어 강원, 영남, 호남 등에서 수십만 가구 이상이 정전을 겪었다.

    이 와중에 경북대 등 일부 대학은 수시모집 원서접수 시스템이 마비됐고, 서울 등에서는 은행업무가 차질을 빚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휴대전화까지 불통되기도 했다.

    대규모 정전 사태로 특히 서비스업종 피해가 엄청났다. 서울 송파동과 인천 연수구 롯데마트에서는 전기 공급이 끊겨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영업하는 등의 일도 있었다. 서울에서는 정전 1시간 만에 90여 건 이상의 엘리베이터 구조 요청이 접수됐고, 부산에서도 30여 건 이상의 구조 요청이 접수됐다. 오후 6시 현재 전국적으로 300건이 넘는 엘리베이터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오피스 빌딩이 밀집한 지역도 혼란을 피하지는 못했다. 작업 중이던 자료들이 모두 날아가는 건 애교 수준. 최첨단 빌딩이라는 삼성 서초사옥도 오후 4시 정전되면서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신호등까지 마비되면서 교통혼잡이 일어나 경찰이 긴급투입됐다.

    다만 정전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자가발전 체제를 갖춰 놓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에너지, 포스코 등 제조 대기업들은 정전 피해를 거의 겪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대규모 정전에 대해 전력분배를 총괄관리하는 한국전력거래소는 정전사태에 대한 설명자료를 통해 "15일 오후 늦더위로 전력 수요가 예측치를 무려 1,000만kwh를 웃돌면서 과부하 상황이 닥쳐 위험상황을 막고 예비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후 3시부터 30분 단위로 의도적으로 지역별 순환정전(단전)을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전력거래소는 자료를 통해 "지역별 순환정전은 오후 8시 이후 정상화 될 전망"이라면서 "전력공급능력이 떨어진 것은 하절기 전력수급기간(6월27일-9월9일)을 지난 상태여서 발전기 계획예방정비(834만㎾)를 시행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 ▲ 한국전력거래소 직원들이 정전사태에 대응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한국전력거래소 직원들이 정전사태에 대응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경부도 정전과 관련해 "오늘 전력피크로 6,400만㎾h의 수요를 예상했지만 6,726만㎾h가 몰렸다"며 "여름철이 다 지났기 때문에 겨울철에 대비해 정비에 들어간 발전소가 많았는데, 이처럼 오늘 예상보다 수요가 많이 몰렸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현재 원자력발전소과 화력발전소 등 모든 발전기 중 고장인 것이 2개, 예방정비 중인 곳이 23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전력거래소와 한전은 오후 3시부터 자율절전과 직접부하제어를 실시한 데 이어 오후 3시 30분부터는 매뉴얼에 따라 지역별 순환정전을 시행했다. 오후 4시35분 현재 전력공급능력 6천671만㎾에 전력수요는 6천260만㎾으로 정리되면서 예비력과 예비율은 411만㎾, 6.6%로 회복됐다.

  • ▲ 염명천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이 대규모 정전사태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염명천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이 대규모 정전사태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율절전은 한전과 수용가가 미리 계약을 맺고 수용가가 자율적으로 전력소비를 줄이는 것이며, 직접부하제어는 한전이 미리 계약을 맺은 수용가의 전력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지역별 순환정전은 이 조치로 예비력 400만㎾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매뉴얼에 따라 지역별로 전력공급을 차단하는 조치이다. 전국적으로 제한 송전을 실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지경부 등 정부당국과 전력거래소, 한국전력은 오후 8시 경이 되면 정상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관계자들은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전력공급 안정이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향후 비판 여론이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