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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인천 문학구장.
“김성근”을 연호하는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분노한 팬들의 외침이었다.
이날 경기가 끝난 직후 그라운드는 쑥대밭으로 변했다. 화난 팬들은 야구장에 물병을 던지는가 하면 SK 유니폼을 태우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 없는 SK 야구는 상상이 안 된다” “삼가 인천 야구의 명복을 빈다” “SK 프런트는 물러나라”라는 성토도 멈추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 경질 이후 벌어진 후폭풍 중 하나다. 과격한 모습이지만 김 감독에 대한 팬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김 감독의 경질소식에 그와 함께 팀을 끌어온 SK 1ㆍ2군 코치 6명도 모두 사퇴의사를 구단 측에 밝혔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은 재임 4년 동안 SK를 우승 3회, 준우승 1회로 이끌었다. 김 감독을 왜 ‘야신(野神)’이라고 하는지, 팬들이 왜 이렇게 아쉬워하는지 알게 하는 성적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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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땀으로 ‘김성근식 이기는 야구’ 완성
김성근 감독은 ‘이기는 야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SK의 스프링캠프가 지옥훈련으로 악명을 떨친 이유 중 하나다.
스스로도 상대의 전력을 빈틈없이 파악하고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 특정 스타 선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바로 직격탄을 날렸다. 선수 개개인이 자신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길 원했다. 여기에는 스타급 선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SK 김성근 감독의 이기는 야구를 두고 ‘재미없는 야구’라는 야구계 일각의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이기는 방법이 어떻다’하는 것은 그 팀에 사정상 움직이는 것이다. 단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야구의 재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융통성 없는 야구 철학 ‘외로운 승부사’김성근 감독은 1988년 OB, 1990년 태평양, 1999년 쌍방울을 잇달아 맡았다. 하지만 번번이 운영방식에서 구단과 의견차이를 보이며 그만둬야 했다.
특히 2002년에는 LG를 한국시리즈에 끌어올리고도 구단이 추구하는 야구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질되는 아픔을 맛봤다.
승리를 위해 감독이 팀 운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야구 철학을 지닌 김성근 감독과 구단의 이 같은 갈등은 한국 문화에서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야구 철학을 지키기 위해 타협을 선택하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은 “초심을 잃을까 봐 타협과 변명이라는 말을 금기(禁忌)로 삼았고, 일부러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갖고 살았다”고 말했다.
“당분간 ‘야신’에서 ‘야인’으로 살 것”
김성근 감독이 18일 자신의 경질과 관련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오후 “잘 된 것 같다. 그동안 피 말리는 시기를 지내 왔는데…”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섭섭할 것 없다”고도 했다.
그는 또 “향후 계획이나 목표는 아무 것도 없다. 일단 당분간은 머리를 식히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며칠 뒤에 어디 대학교에 가서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 아니냐”며 말끝을 흐렸다.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인 김성근 감독은 그동안 SK 구단과 재계약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계에서는 구단과의 마찰이 이번 경질 사태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이에 대해 “이야기하면 지저분해진다”라며 말을 아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