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미국 방문을 전후로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의 당위성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이후 북한 매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평화협정과 관련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28일 `평화보장체계는 시급히 수립되어야 한다'는 개인 필명의 논평을 통해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항구적인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미(朝美) 사이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하루빨리 끝장내고 항구적인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그 전날에는 조선중앙통신이 `정전협정과 조선반도'란 제목의 논평에서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를 포함한 조선반도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했고, 박의춘 북한 외무상은 지난 2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RF 연설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 같은 목소리에는 대미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한다.

    이들은 우선 북핵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 6자회담의 논점을 흐리고 협상의 판을 흔들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수단인 평화협정이 핵 문제보다 더 복잡하고 장기간에 걸쳐 풀어야 할 문제인데도 북한이 6자회담 재개 분위기에 맞춰 이를 내세우는 것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을 비롯한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가능한 한 회피하려는 `물타기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앞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면 평화협정 체결을 주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나설 개연성이 크다.

    북한은 과거 6자회담에서도 평화협정 체결을 끈질기게 주장했고, 결국 비핵화 원칙을 담은 2005년 9·19공동성명에는 "관련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29일 "북한은 6자회담 과정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의제로 다룰 것을 강하게 요구함으로써 협상의 흐름을 주도하고 북미관계를 풀어가는 고리로 삼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강조하는 것은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그동안 서해에서 빚어진 남북간 군사적 충돌은 정전상태에서 비롯됐다며 평화협정이 체결됐더라면 연평도 포격 사건은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앞으로 대화 국면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 남북한간 지루한 기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보다 북핵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비핵화 과정과 함께 평화협정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국 정부는 남북한이 협정의 주체적 당사자가 돼야 한다며 맞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