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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차를 좋아하시는 아주 맑은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일찍 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 ▲ (서울=연합뉴스) 신광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지난 24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자와 지인들이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사진은 故 신광현 교수의 모습. ⓒ
신광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24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자와 지인들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향년 50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한창 힘쓸 나이였기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제자들은 신 교수를 다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낭만적인 선생님으로 기억했다.
25일 오후 빈소에서 만난 이유진(21.자유전공학부)씨는 "영혼이 참 순수한 분이셨다. 학생들에게도 너무 친근하셔서 80~90명이 듣는 교양수업에서도 수강생 이름을 일일이 부르시고 이름도 다 외우셨다"고 회상했다.
같은 과 문성원(20)씨는 "1학년 1학기 수업이었는데 선생님이 창밖을 보시더니 '벚꽃이 참 아름답다'고 하시며 갑자기 야외수업으로 전환했다. 그때 기억이 계속 아른거린다"고 추억했다.
석사 과정 때 신 교수에게 배운 손영주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지셨고 졸업한 제자들에게까지 일일이 신경 써 주실 만큼 자상한 분이셨다. 항상 마음공부가 중요하다고 하시며 평정심을 가지라고 조언하셨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선생님이 써 주신 유학 추천서에는 제자의 세세한 특성까지 잘 드러나 있어 이를 받아본 대학 측에서 놀라기도 했다"고 전했다.
신 교수의 전공강좌는 영문과 학생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코스로 자리 잡을 만큼 정평이 나 있었다. 교양강좌 '문학과 정신분석'은 항상 수강 인원을 넘겨 학생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온화하면서도 엄격한 신 교수의 교육철학은 학교에서도 인정을 받아 2009년 서울대 교육상을 받기도 했다.
중세 영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번역이론과 비평이론, 정신분석학에 이르기까지 관심 분야가 다양했다.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고 번역에 관한 저서도 곧 출간할 예정이었다.
1년 전만 해도 여름학기에 베이징대에서 강의할 만큼 건강했던 신 교수가 몸에 이상 징후를 느낀 것은 올해 2월. 검사 결과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잠시 호전되는 듯했지만, 5월 들어 다시 병세가 악화했다.
신 교수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학생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대학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었는데 소중히 간직하겠다', '대학에서 진짜 인간미를 안겨주신 분', '서울대에서 본 가장 인자하신 선생님' 등의 기억을 모아 놓고 고인을 추모했다.
한 제자는 "갑자기 편찮으셔서 병원에 실려가실 때조차 지도학생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사주려던 약속이 미뤄졌다며 미안해하셨다. 방세가 소진돼 갈 데가 없어 학교 연못 근처에 앉아 있는데 선생님이 '아르바이트비'라며 장학금을 주시면서 '언제 책이나 정리해달라'고 다정하게 말하셨다"는 내용의 추모글을 올려 눈시울을 적시게 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94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섰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설 영문화권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고 기초교양교육 웹진 '열린지성' 부편집위원장으로 활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