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조서 공개‥유혈진압 지시 부인시위대, 軍과도정부 개혁에 불만 "15일이 최후통첩"
  •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재판을 기다리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자신은 이른바 `인(人)의 장막' 속에 있었으며, 시위가 시작될 때까지 국민의 요구사항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시위 참가자 800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고 간 `유혈진압'을 지시한 혐의와 재임 중 부정부패 혐의 등을 전면부인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다시 모여든 시위대는 무바라크 체제 붕괴 이후 민주주의 이행의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된 군부가 개혁 조치와 과거 정권 단죄에 소극적이라며, 이슬람권 휴일인 15일(현지시각) 대대적인 시위를 예고했다.

    ◇무바라크 "폭력진압 지시? 경찰들이란 원래 그런 것"= 이집트 민영신문인 알 요움 알 사베아와 알 두스투르가 14일 공개한 무바라크의 검찰 조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 1월25일 이집트 시위가 시작되기 전까지 상황의 엄중함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서 최고위 참모들이 친 장막 때문에 자신이 어둠 속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의 시위대 유혈진압에 대해 자신은 무력을 쓰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했다면서 "나는 경찰에 거리의 질서를 회복하라고 요구했으나 그들 일의 속성 때문에 그들은 지시받은 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시위 참여자들이 왜 죽거나 다쳤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정확히 말을 못하겠다"면서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공격하는 상황에서 혼란이 있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그는 이어 왜 경찰의 유혈 진압을 중단시키지 않았느냐는 추궁에는 "누구도 나와, 내 명령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 및 유지를 위한 외국 원조 기금 수백만 달러가 자신의 은행계좌에 예치된 사실에 대해, 관련 도서관 책임자들이 돈을 유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이 보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사법당국은 이 같은 조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혔고, 무바라크의 변호인들은 조작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지난 1월25일부터 18일간 이어진 시민혁명 때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고, 직위와 권한을 이용해 부정축재한 혐의로 기소됐다.

    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했던 무바라크는 지난 2월11일 권좌에서 물러난 뒤 시나이 반도의 홍해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에 칩거해오다가 4월부터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무바라크의 첫 공판은 다음달 3일 열린다. 이집트 사법당국은 법정 밖 대형 스크린을 통해 무바라크의 재판을 실황중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대, 개혁·과거청산 지지부진한 군부에 폭발직전= 무바라크 사임 후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에 대한 민주화 지지세력들의 반발도 임계치에 접근하고 있다.

    총선과 대선 등 민주화를 위한 일정들이 신속하게 추진되지 않고 있고, 과거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단죄도 미진한데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과도 정부는 유혈 진압에 책임이 있는 경찰관 600명 이상을 해임하고, 개각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공언했으나 시민사회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14일 이집트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에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몰려와 군정 당국이 과거 부패에 연루됐거나 무바라크 체제하의 시민 탄압에 관여한 인사들을 신속히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슬람권 휴일인 15일 예정된 시위가 군정 기구인 이집트군 최고위원회를 향한 `최후통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동차 판매사원인 모하메드 살라 엘 딘(26)은 "TV를 통해 군부 인사들의 연설을 지켜보면서 나는 군부가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우리의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타흐리르 광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자영업자인 아테프 파루크(37)는 "일부 군부인사가 어제 타흐리르 광장을 찾아와 `선거가 해법'이라며 우리를 설득하려 했다"며 "나는 선출된 과도 정부기구를 원하며, (현재 과도통치를 맡고 있는) 군 최고위원회는 정치에서 손을 떼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4일 카이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집트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며 이집트의 민주적 권력 이양을 지지했다.

    바호주 위원장은 현재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며 "당신들이 계속 성공할 수 있다면 이집트 사례는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다른 사람들의 투쟁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