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철수로 드러난 AI 인프라 자금 조달 구조의 한계'소유' 아닌 '평생 임대' 모델, 부담은 누가?AI 투자 비용·현금흐름 재평가 나선 월가데이터센터 정점 논쟁 본격화…인프라 투자, 조정국면 들어섰나
  • ▲ 오라클 로고. 출처=로이터ⓒ연합뉴스
    ▲ 오라클 로고. 출처=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의 자금 조달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소식에 '데이터센터 피크론'이 본격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을 떠받쳐 온 인프라 투자가 속도조절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떠오르면서다.

    17일(현지시각) 뉴욕증시에서 오라클의 주가는 5% 이상 하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로이터 통신은 오라클이 미국 미시간주에서 추진하는 100억 달러 규모의 오픈AI 전용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자금 지원 협상에서 글로벌 사모자산운용사 블루아울 캐피털이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프로젝트는 1GW(기가와트)급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건설해 오픈AI의 AI 연산 수요를 장기간 책임지는 구상이다.

    오라클의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분야에서 핵심 투자자로 활동해 온 블루아울 캐피털의 이탈은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금융권의 태도가 신중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오라클은 블루아울 캐피털이 이번 프로젝트의 공식 지분 투자 파트너가 아니었다며 계획에 차질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달랐다.

    FT는 "AI 인프라 확장을 떠받쳐 온 자금 조달 구조에 대한 불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이른바 '데이터센터 피크론'이 촉발된 것이다. 피크론은 수요에 따라 데이터센터 투자가 성장하는 국면에서, 투자 속도가 실제 수익성을 앞지르기 시작하는 지점을 뜻한다.

    AI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수요를 대비해 지어진 인프라가 과연 투자비를 정당화할 만큼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 ▲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출처=EPAⓒ연합뉴스
    ▲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출처=EPAⓒ연합뉴스
    최근 오라클 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구글 등 빅테크들은 과거처럼 직접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인프라 시설을 소유하기보다는, 외부 투자자가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이를 장기 임대해 사용하는 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이 구조로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재무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수십 년에 걸쳐 임대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 압박이 커진다.

    재무제표에는 즉각 드러나지 않지만 경기와 무관하게 계속 지출되는 비용이라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부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AI 인프라 경쟁이 심화하면서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 규모가 급증했고, 일부 기업은 향후 수십 년간 부담해야 할 비용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AI 수요 성장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이 같은 고정 비용 구조가 기업 수익성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오라클의 사례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번 투자협상 결렬은 오라클의 부채 확대와 AI 인프라 지출 급증에 대한 우려 탓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기준, 오라클의 부채는 1050억 달러(약 155조원)다. 1년 전(780억 달러) 대비 34.6% 증가한 규모다.

    로이터에 따르면 오라클은 최근 수년간 데이터센터 확장을 위해 대규모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해 왔고 이로 인해 향후 비용 부담도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짐은 다른 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FT는 최근 보도에서 일부 글로벌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신규 프로젝트에 이전보다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투자자들도 AI라는 명분만으로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던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사모펀드와 인프라 투자자들은 전력 확보 비용, 운영비 상승, 장기 임대 계약의 유연성 부족 등을 이유로 투자 조건을 재검토에 나섰다.

    월가 애널리스트들도 경고음을 높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인프라 수요는 장기적으로 유효하지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속도가 현금흐름 개선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면서 "투자 구조에 따라 일부 기업은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부담을 체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주식시장에서도 확인됐다. 이날 오라클 주가 급락과 함께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알파벳 등 주요 AI 관련 종목이 동반 약세를 나타냈다.

    AI 성장 신화는 진행 중이지만, 그 신화를 떠받치는 인프라 투자가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확대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데이터센터 피크론 논쟁은 당분간 글로벌 시장의 핵심 화두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