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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1.
어느 날 서울대 보건진료소 정신건강센터에 남학생이 찾아 왔다.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잠을 잘 수가 없고, 밥을 먹고 싶지도 않고, 몸무게는 점점 줄고, 공부에 집중도 안 된다고 했다.자취방에 틀어 박혀 있다가 밤이 되면 제어할 수 없는 불안감에 마구 뛰쳐나와 빗길을 미친 듯 뛰어다닌 적도 있다고 했다.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10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다행히 센터를 지키는 의사는 해당 학생을 신속하게 응급진료한 뒤 약물을 투여해 최악의 위기는 피했다. 진료소측은 충동을 진정시킨 후 학생에게 정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토록 했다.
그 학생은 약물을 복용하면서 불안과 자살충동 증세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센터에 처음 찾은 지 한 달 만에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심신의 안정을 찾은 그는 학기를 마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돼 휴학을 뒤로 미뤘다.
# 사례 2.
여학생이 약을 달라고 왔다. 자살하려고 하는데 어머니 생신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그 때까지 버틸 만큼만 처방해 달라고 했다. 자취방에 이미 목을 맬 위치도 정해 두었다고 했다.자살 충동이 극에 달했으니 입원하라고 권고했다. 울기만 하는 여학생을 달래서 여동생 연락처를 받아 내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구급차를 불러 대학병원 정신과 병동에 입원시켰다.
정신건강센터에 찾아 왔던 또 다른 학생의 이야기다. 이 학생에게는 학교 보건진료소 차원에서 해 줄 것이 별로 없었다. 길고 긴 터널을 통과해 세상에 다시 나온 그 학생은 무사히 졸업장을 받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올해 초 한국 최고의 과학기술 영재들이 다니는 KAIST는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로 온 학교가 패닉 상태에 빠질 정도로 큰 충격에 빠졌다. 한국사회도 크게 동요했다.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세우면서 KAIST는 극심한 몸살을 겪었다.
OECD 자살률 1위.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한국사회의 암울한 자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사회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우리 대학생들은 꽃다운 청춘을 미련없이 버리고 있다. 학생자살은 KAIST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극심한 학업스트레스와 친구도 선후배도 없는 살벌한 경쟁,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 등으로 인한 경제적 고민,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 등은 한국의 대학생들을 자살로 내 몰고 있다.
앞의 두 사례는 모두 국내 최고 대학인 서울대 보건진료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서울대 보건진료소에 따르면 앞의 두 학생은 모두 우울증의 주요 증상 아홉 가지를 전부 또는 일부 경험한 경우였다고 설명했다.흥미와 의욕을 상실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우유부단해 지고, 초조감이 생기는 것 등이 대표적인 우울증 증상이다.
‘우울’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울증’은 의사의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자살의 80%는 우울증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조사결과도 있다.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자살한 서울대 학생은 보건진료소 집계로 12명이고, 이 중 6명은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이렇게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 충동을 가진 학생이 서울대에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우울한 답변이 기다리고 있다.
2004년에서 2010년 사이 서울대 보건진료소 신경정신과 이용 건수는 15배가 늘었다. 그 중 무려 50%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2007년 문을 연 정신건강센터를 찾은 학생은 지금까지 46,150명에 이른다. 진료소 자체 조사에 의하면 2009년 처음 센터를 찾은 학생 147명 중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응답한 학생은 30%였다. 147명 중 9%는 구체적인 자살 계획이나 시도가 있었던 학생들이었다.
보건진료소 정신건강센터를 알고 찾아오는 학생들은 항우울증 약물치료를 받은 후 대부분 한 달 이내에 상당히 호전된다. 약물을 중단한 이후에도 호전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항우울증 약물은 마약류가 아니기 때문에 중독성이 없고 부작용도 미미하다.
우울증의 원인을 없애면 자살이 줄겠지만 그러기에는 삶에서 우울증을 일으키는 요인이 너무 다양하다. 보건진료소 조사에 따르면, 가족갈등, 실연, 학습부진, 대인관계 문제가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서울대 학생들의 우울증을 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서울대 보건진료소는 정신건강세터 운영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자가 15배가 느는 동안 의료진은 늘지 않았기 때문에 초진을 신청한 학생의 경우 대기 기간이 2주에 달한다.
2주를 기다린 학생이 진료소를 찾아 “자살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기 전에, 우울증은 아까운 학생을 또 하나 데려갈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