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생과 함께 12년째 시설 생활하며 병든 아버지 수발
  • "아빠 곁에 제가 있어야 하는데.."

    사회복지시설에서 두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는 18세 고등학교 3학년 한 소녀의 딱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혜진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전남 영광의 한 아동 양육시설에서 생활해 오고 있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 외가에서 지내던 중 아버지마저 병이 들고 말았다.

    아버지(49)는 "건강이 좋아지면 금방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 친구 누나가 운영하는 이 시설에 김양과 두 동생을 맡겼다.

    당시 생후 6개월이던 막내 남동생은 고모 집으로 가게 되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 지내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시설에서 생활한 지 얼마 안 돼 "하늘이 빙빙돈다"며 병원에 간 막내 여동생(16)이 제대로 못 먹은 탓인지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철이 없던 김양은 "세상은 왜 나에게 이러한 고난을 줄까"라며 부모가 원망스러웠지만 어린 두 여동생의 얼굴을 보며 힘을 냈다.

    다행히 동생은 병마를 이겨내고 공부도 잘하는 어엿한 소녀로 자랐다.

    김양은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 선물을 주고받는 친구들의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내심 아빠가 하루빨리 건강해져 금방이라도 데리러 오길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데리러 올 거라는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병은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됐다.

    뇌병변장애, 장 복막 등으로 신장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고 당뇨 합병증으로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다.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병원 측의 진단에 김양은 수없이 많은 밤을 눈물로 새웠다.

    수년간 주말이면 고향인 영암 집에서 혼자 투병하는 아버지를 돌보러 갔다.

    작년에는 기다렸던 엄마마저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 버렸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김양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이 시설 원장 이연숙(57)씨는 김양의 아버지를 아예 시설로 데려왔다.

    김양은 병들고 초췌한 아버지를 곁에 두고 간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하루 5번씩 하는 투석도 마다하지 않고 용변 문제 등 아버지 수발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원장 이씨는 19일 "잠깐 부탁한 아이들과 12년간이나 함께 지낼 줄 몰랐다"면서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밝은 혜진이가 기특하기 그지없다. 병든 아버지를 위해 밤낮없이 병 시중하는 혜진이를 보면 효녀 심청도 저렇게 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양은 자신과 동생들을 돌봐준 이 원장을 엄마로 부른다.

    힘든 환경에서도 김양은 좌절하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해 장학금까지 받고 있다.

    그런 김양에 최근 걱정거리가 생겼다. 병든 아버지를 두고 다음 달 경기도 파주에 있는 직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인에 소질이 있는 김양은 이 원장이 학비 지원과 함께 대학 진학을 주선했지만 두 동생과 아버지 뒷바라지를 위해 취업을 선택했다.

    김양은 "아버지 약값도 문제지만 둘째가 나보다 공부를 잘해 대학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택했다"고 말했다.

    동생들에게 아버지 모시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미덥지가 못하다.

    김양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소원이 있다. 아버지가 하루빨리 회복되고 어머니와 세 동생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