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에 핵보유국 지위·적대시정책 철회 요구美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 화답北 통미봉남 전제, 동족→적대국·영원한 적주한미군 유연성 입장차 드러낸 사과공방美 '역키신저 전략' 결합 시 韓 고립 우려한미훈련, 실제 훈련 줄이고 시뮬레이션 위주자주파 라인 '사보타주'에 부처 공조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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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김정은이 지난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9차대회 기념 열병식 주석단에서 연설하는 모습.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북한이 제9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대한민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2.0'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으로 규정하며 "완전 붕괴"를 경고하는 한편 미국을 향해서는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적대시 정책 철회'를 전제로 한 대화의 문을 열었다. 당 대회 폐막 직후 열린 열병식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신형 전략무기 공개를 자제하는 등 11년 만에 무기 없는 행사로 치른 것은 오는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군축 협상을 제안하는 고도의 전술로 평가된다.◆北 핵보유국 지위·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에 "조건 없는 대화" 화답한 美1일 외교가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6일 북한 김정은이 이번 당 대회 총화 보고에서 "만일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조미 관계의 전망성은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밝혔다.반면에 한국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수사를 동원해 대화 여지를 원천 차단했다. 김정은은 "(노동당이) 조선반도에 존재하여온 비정상적인 관계에 역사적 종지부를 찍고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 정립하는 최종적인 중대 결단을 내렸다"면서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이에 미국이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여전히 열려 있다고 즉각 화답하면서 통미봉남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26일 한국 언론의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한반도를 안정화한 역사적 정상회담을 세 차례 개최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어떤 전제조건 없이 김정은과 대화하는 데 열려 있다"고 답했다.물론 백악관은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변함이 없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원칙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지만 "전제조건 없는 대화" 의미에 따라 미북 대화는 '비핵화'가 전제였던 하노이 회담과 달리 북한의 의도대로 '핵보유국 간 핵군축'을 전제로 흘러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7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전북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北에 명분 제공하는 '이재명표 현실론', 김정은의 대남인식 오독그간 국제사회와 발맞춰 북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한 역대 정부와 달리 이재명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통미봉남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핵 현실을 인정하자"며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군축' 협상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 "비핵화가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엄연한 현실과 바람직한 이상은 쉽게 공존하기 어렵고 그 사이 핵무기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북핵 해법과 관련해서는 "1단계로 핵무기 개발 중단 협상을 하고 다음 단계로 핵 군축 협상, 길게는 비핵화 협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핵군축 스몰딜'을 주장했다. 이를 토대로 추론해보면 그의 대북 구상인 'E·N·D 이니셔티브'(Exchange·교류, Normalization·관계정상화, Denuclearization·비핵화)는 교류와 관계 정상화를 비핵화보다 앞세우는 구조다.그러나 북핵 보유가 현실이며 북한 비핵화가 이상이라는 인식이야말로 핵군축 스몰딜이 안보에 가져올 후과를 간과한 이상론에 가깝다.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3단계 해법은 2단계에서 멈추면 북한이 인도·파키스탄급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서 핵을 가진 채 교류만 진행되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또 김 씨 정권의 영속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김정은이 정보 유입에 따른 주민들의 대남 인식 변화를 억제하고자 남북 교류와 대화 가능성을 법적·군사적 수단을 총동원해 원천 차단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낙관적 오독이기도 하다.◆北 '통미봉남 2.0'·美 '역키신저 전략' 조합 … ICBM과 韓 안보 맞바꾸는 '스몰딜'북한 비핵화가 이상론이라는 '이재명식 현실론'과 남북·미북 관계에서 미국이 피스메이커(peacemaker) 역할을 맡으면 한국이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을 하겠다는 '피스메이커론'은 남한 대통령도 북한 핵을 인정했다는 명분으로 미국에 '한국도 군축을 원하니 적당히 타협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위험성이 있다.이 대통령의 구상과 북한의 '통미봉남 2.0', 미국의 '역(逆) 키신저 전략'의 조합은 한국이 배제된 채 북한의 전략핵 폐기와 미북 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스몰딜'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높일 우려가 있다. 미국은 과거 냉전 시기에 주적인 소련을 고립시키고자 중국과 손잡고 미·중 국교를 정상화했듯이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함으로써 현재의 주적인 중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역 키신저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특히 김정은 정권이 최근 구사하고 있는 통미봉남은 '적대적 두 국가론'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민족 공조' 프레임에 기반했던 과거의 통미봉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막기 위한 목적도 일부 있었겠지만 북한은 2016년 "핵무기가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기만극으로 끝났던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초 표면적인 남북 해빙 국면까지만 해도 "국가 핵 무력은 민족 공동의 전략자산으로서 결코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했다.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북한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자국 본토를 위협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억제에만 집중하고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은 사실상 용인하는 핵군축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면 주일미군 중심의 방어선 재편 속에서 한국이 방치되는 '제2의 애치슨 라인'이 현실화할 수 있다. -
- ▲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제이비어 브런슨 유엔군사령관이 지난해 9월 8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유엔사 창설 7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박수를 치는 모습. ⓒ뉴시스
◆흔들리는 한미 연합방위 … 절반 이하로 줄인 야외기동훈련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초기 합의에서는 직접 요구하지 않되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 이후 이를 명분으로 단계적으로 요구할 전망이다. 북한이 미국에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는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영구 중지, 주한미군 철수 및 평화협정 체결, 유엔 안보리 제재 및 미국 독자 제재 철회 등을 의미한다.이에 한 대북 전문가는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북한은 이를 근거로 '적대시 정책을 포기한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주한미군을 두고 있냐'면서 철수를 압박해 제2의 월남 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현장의 안보 공조는 이미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미는 다음 달 9일 시작하는 방어적 성격의 정례 연합연습인 '자유의 방패'(FS)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반의 지휘소연습(CPX) 중심으로 진행된다. 실제 병력과 장비를 전개하는 야외기동훈련(FTX) '워리어 실드'(WS)는 지난해 51건에서 올해 22건으로 절반 이하 수준으로 축소해 실시하기로 했다. 그 배경에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 기조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한 군 소식통은 "국방부가 주장하는 '연중 분산 실시'는 일반론일 뿐이고 궤변"이라며 "CPX와 FTX를 병행해서 실시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므로 FS 때 FTX를 집중해서 실시해 왔고 가능한 많은 부대가 동시에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년 전부터 중간중간에 합참의장, 연합사령관에게 공동으로 보고하고 승인받는 연합연습 훈련계획을 훈련을 앞두고 변경하는 것은 국가 간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입장 차 드러낸 한밤중 사과 공방한미일 3국 공조 약화와 동맹 신뢰 하락 우려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앞서 정부가 미국이 지난달 15일 제안한 한미일 연합훈련을 거절하면서 지난 18일 서해상 주한미군 단독 공중훈련과 16일·18일 미일 공동훈련만 진행됐다. 특히 서해상 공중 훈련을 둘러싼 한미 군 당국 간 '사과 공방'은 단순한 소통의 오해를 넘은 수준으로 치달았다.결국 현 정부의 '중국 눈치 보기' 식 대응으로 인해 양국 군 수뇌부 간의 신뢰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낳고 있다. 미군의 서해상 공중훈련 당시 중국 전투기들이 자국 방공식별구역(CADIZ)에 가까이 접근하는 미군 전투기에 대응해 출격하면서 미중 전투기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9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에게 직접 전화로 항의했다. 뒤이어 브런슨 사령관이 안 장관에게 사과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국방부 역시 이를 사실상 인정했다.그러자 주한미군이 지난 24일 밤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국방부에 정면 반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주한미군은 "브런슨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과 통화해 한국 측에 (서해 훈련 관련) 사전 통보가 이뤄졌음을 재확인했다"며 "주한미군은 최고 수준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훈련을 하고 있고 대비 태세 유지를 위해 사과할 일은 없다고 본다"고 사과설을 일축했다.이 사과 공방은 한국이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의제, 트럼프 행정부 국방전략(NDS)의 핵심인 '거부적 억제'(Deterrence by Denial)와의 전략적 괴리를 노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안보 전문가는 "미국은 대중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을 대만 유사시 기동전력으로 활용하려 한다"며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거부하고 주한미군 병력을 대북 억제용으로 한반도에 묶어두려 하므로 미북 관계 개선 시 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주한미군 주둔 당위성은 북한의 확고한 핵 보유국 지위 고착화 의지, 자국 우선주의(MAGA)에 기반해 '노벨 평화상'이라는 외교적 치적을 갈망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적 접근, 대북 억제력 강화보다 평화 공존의 명분 아래 군축을 합리화하는 이재명 정부의 안보 인식에 따라 재평가될 위기에 처해 있다.이러한 내외적 변수가 맞물리면 미국이 일본을 대중 견제의 유일한 핵심 보루로 설정하고 한국을 방어라인 후순위로 밀어내는 '제2의 애치슨 라인'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특히 워싱턴 내에서 "미북 관계 진전 시 일본만으로도 역내 봉쇄가 충분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설득력을 얻으면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과거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의 피로감을 넘어서는 대한민국 안보의 지정학적 고립이자 회복 불가능한 주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
- ▲ 2024년 6월 19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긴급 간담회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 '6인회' 인사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왼쪽부터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석·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문정인 전 외교안보특보. ⓒ서성진 기자
◆자주파 라인의 '사보타주'에 부처 공조도 '마비'여기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자주파 라인의 한미 대북 공조 '사보타주'로 정부 내 공조마저 마비됐다. 자주파 전 통일부 장관들(임동원·정세현·이재정·조명균·김연철·이인영)은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과거 남북 관계 역사에서 개성공단을 만들 때나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 외교부는 미국 정부보다 훨씬 더 부정적이고 보수적이었다"며 "통일부가 중심이 돼 남북 관계 재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부의 불참으로 이재명 정부의 첫 '한미 대북정책 협의체'는 반쪽짜리로 출범하고 말았다.한 전직 안보 관료는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20~30년 전 북한을 상대해 본 기억에 매몰돼 변화된 북한 실상을 전혀 모르는 자주파 인사들로 포진해 있다"며 "이들은 '제2격 능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을 20~30년 전 핵개발 초기 단계인 북한과 동일시하고 있다"고 했다.이어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들을 '대북·안보 멘토'로 삼아온 이 대통령은 대북 억제력 강화를 전쟁 촉발을 유발하는 자극으로 간주하는 듯하다"며 "외교·안보 라인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