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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아니라 傳道다, 戰爭이다.
처음부터 60% 이상이 눈을 감고 나머지 사람도 다른 책을 보거나 심지어 노트북으로 영화를 본다.
“너 같은 극우·꼴통의 주장은 듣지 않겠다”는 적극적 비토(veto)의 표현이다.
金成昱
불러서 가는 강연, 부르지도 않는데 차비도 안 받고 만들어 가는 것, 대학생 멘토 역할까지 합치면 요즘은 일주일 내내 전국을 도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가장 신나는 청중은 靑年(청년)이다. 학생이건, 군인이건, 경찰이건, 공공기관 연구원, 심지어 左派(좌파)운동권 학생들, 영남과 호남을 넘어, 靑年은 비전을 던질 때 가장 빠르게 환호한다.
그들이 종교인이라면 더욱 뜨겁다. 부흥을 꿈꾸는 이들은 북한과 통일의 이슈 앞에 소망을 찾는다. 아직은 작은 규모지만 에스더운동이 발양하고, 다윗의 세대가 일어나며, 크로스러브가 부흥하고, 지저스아미는 국경을 넘는다. 민족사의 가장 결정적 시기에 한국의 절망을 뚫고 나온 희망의 새싹들이다. 나는 저들 순결한 청년의 환호를 들으며 이 땅이 포기될 수 없는 거룩한 民族(민족)의 성지임을 깨닫고 온다.
영혼 없는 바위 같은 이들도 많다. 너무도 많다. OOO 지역 교회에 갔는데 김정일 비판을 한 15분 했더니 적대적 눈빛으로 쬐려보던 어른들 몇몇이 나가버린다. 민노당 세력이 강한 데라던데 거슬렸던 모양이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끔찍한 참상을 알려줄 때 ‘피식’대는 이들도 나온다. 이런 엽기적 현상은 불특정 다수를 모아둔 공공기관에 갔을 때 격렬해진다. 한국인이 善(선)과 惡(악)에 대한 분별을 잃어버렸고 양심이 무뎌져 있음을 보면서 절망적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가장 끔찍한 강연은 OOO 지역 공무원 연수기관에 갔을 때다. 좌파 출신 지사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심각했다. 처음부터 60% 이상이 눈을 감고 나머지 사람도 다른 책을 보거나 심지어 노트북으로 영화를 본다. 쇼킹한 말을 해도, 자극적 영상과 사진을 보여줘도 마찬가지다. 반응이 없다. 노조의 事前 공지가 돌았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청중은 “너 같은 극우·수구·꼴통의 주장은 듣지 않겠다”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이런 날은 강연이 아니다. 사실을 말하면 할수록 더욱 노골적 비토를 놓는 탓이다. 나는 傳道(전도)에 나선 바울이 되고, 倭軍(왜군)과 싸우는 의병이 된다. ‘한국이 망한다!’ 겁도 주고 ‘답답한 현실’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고 거의 울먹이며 하소연한다. ‘저들을 살려 달라’고 탄식도 하고 사정도 해본다.
강연은 희망의 메시지로 끝을 내지만, 나는 脫盡(탈진)해 버린다. 서 있을 힘도 없고 쓰디쓴 입술에 목이 저리다. 그래도 또 다시 전투에 나서는 이유는 강연을 하면서 뜨여진 그들의 눈빛과 변화된 표정, 각성된 정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의 어둠을 쫓는 鬪士(투사), 빛의 전령들이다. 惡(악)이 창궐할수록 시대는 영웅을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