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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1년 7월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한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대통령보좌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을 맞은 것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였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에 이어 `2인자'였지만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17일 발간된 자신의 저서 `중국에 관해(On China)'에서 "60여년에 걸친 공직생활에서 그보다 더 강렬한 인물을 만난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처음 두 지도자를 만났을 때 그들은 무려 40년간 동지였으나 이들은 차이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마오는 대중을 압도한 반면 저우는 대중에 퍼져나가는 인물이었고, 마오의 열정이 적을 장악하려 한 데 비해 저우의 지혜는 상대를 설득하거나 노련하게 다루는 쪽이었고, 마오는 냉소적이었지만 저우는 날카로웠다는 것.
또 마오가 스스로를 철학자로 생각한 데 비해 저우는 자신을 관리자나 협상자로 여겼고, 마오가 역사를 가속화하려 한 반면 저우는 역사의 물결을 타는 데 만족했다고 키신저 전 장관은 지적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그러면서 저우 총리가 첫번째 만남에서 "우리 두 나라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당신의 나라는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우리 나라의 역사는 (공산정권을 수립한 지) 22년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 나라가 당신 나라보다 어리다"는 덕담을 건넨 일화도 소개했다.
사이공, 방콕, 뉴델리와 파키스탄의 라왈핀디 등을 거치며 언론의 추적을 벗어나 48시간 동안 극비리에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키신저 전 장관은 "작지만 기품있고, 눈에서 빛이 나며 표정이 풍부한" 저우 총리와 함께 역사적인 미.중 정상회담의 길을 열게 된다.
그러나 그로부터 7개월뒤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함께 다시 중국을 찾아 저우 총리를 다시 만난 키신저 전 장관은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1972년 2월 21일 베이징에 도착한 직후 저우 총리가 자신을 불러내 "마오 주석이 닉슨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통보했고, 마치 중국 지도자가 미국 지도자를 소환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을 우려해 몇가지 절차상 질문을 던졌지만 저우 총리는 "주석이 초대한 것은 빨리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자신의 관저에서 닉슨 대통령 일행을 맞은 마오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심장질환과 폐병이 잇따르면서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고 키신저 전 장관은 소개했다.
마오는 자신의 불편함을 이기려는 듯 양손으로 닉슨 대통령의 손을 잡고 함박웃음을 짓는 등 지나칠 정도의 의지력을 보여줬는데 이 광경을 찍은 사진이 모든 중국 신문에 실렸다고 한다.
이 역사적인 만남을 시작으로 일주일뒤 상하이(上海)에서 "양국 관계정상화는 상호 국가의 이익이 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중미 공동성명'이 발표돼 두 나라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고 키신저 전 장관은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