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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 이인수 박사가 19일 4·19 혁명 당시 부정선거에 항거하다가 숨진 학생들의 유족에게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사단법인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와 이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 박사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수유리 4·19 묘역을 참배, 헌화하고 당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숨진 학생과 유족에게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이인수 박사와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의 이 같은 행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우선 과연 ‘사과’가 필요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한 시민은 “이승만 대통령은 4.19 당시 발포로 부상당한 학생들을 찾아가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했고, 더 이상 학생들이 다치면 안 된다면 하야했다. 비록 자신이 늦게까지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자유당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었지만, 최고 통수권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하야한 분이다”라며 “하야 이상의 책임과 사죄가 어디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아직 제대로 역사적 평가도 올바르게 내려지지 않은 사건에 ‘사죄’를 한다는 것은 성급하고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재미교포로 보이는 한 시민은 “이승만 박사는 정치가가 아닌 위대한 애국자(Dr. Rhee was the great patriot, not a politician)”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어느 시민은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 진 후에 그 때 가서 사과할 게 있다면 사과하라”며 “후손이라고 지금 나서서 사과 운운 하기에는 시기상조이고 주제넘은 행동 같다”고 말했다.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결단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한 시민은 “이 대통령은 국민의 정서를 알고는 사퇴했다. 그러나 정치가로서 완벽한 민주주의는 못 끌어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지도자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수준과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당시 한국은 그 어느 한 가지도 갖추지 못했었다. 그래도 이승만대통령은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었고 그것을 실천했다”고 하야를 높이 평가했다.
다른 시민은 “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신념을 가진 분이었다. 만약 4.19가 이북에서 터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시위대는 모조리 탱크 아래 깔리고 무수한 총탄세례를 받으며 쓰러져 갔을 것이다. 오늘 날도 독재자는 국민을 희생해가며 버티고 있음을 본다. 그에 비한다면 이 대통령은 희생이 커지기 전에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다. 독재권력의 유지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 소중함을 가졌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공산주의를 배격하며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분을 부정한다면 그 부정하는 이들은 곧 공산사회주의에 마음을 두는 이들같아 긍정보다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을 공경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국민의 자세로 유족의 사과가 자칫 표현이 잘못되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양이면 그런 국민은 가치관의 혼란만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