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로 대한민국은 시끄럽다.

    한쪽에선 애물단지로 전락한 국내 공항들의 사례들과 인근 일본 간사이국제공항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으라며 백지화를 적극 환영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국민들과의 약속인데 왜 지키지 않느냐며 결사 반대하고 있다. 당장 해당 지역 민심은 흉흉하여 폭발 직전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인들은 손가락으로 표를 헤아리며 양측면을 오가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래 세대에 엄청난 재정 적자 부담을 안겨줄 것이 거의 확실한 대형국가프로젝트를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해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주장인지를 공약이 나오게 된 출발점에서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선거 캠프는 그 속성상 국가미래 비전의 큰 그림과 더불어 지역마다 산적해 있는 주민들의 숙원적 사업들을 모아 공약집으로 내놓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지역이나 계층에 따라 상충되는 다양한 이익 관계가 포함되기도 하며 경제성이나 환경 영향 등을 면밀하게 검토되지 않은 채 나오는 아이디어 차원의 대형국가프로젝트가 포함되기도 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 지역주민의 숙원들을 이해 상충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지만, 선거캠프의 속성상 경제성이나 환경 영향 평가 등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재정적 구조나 인적 구성을 갖추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디어 차원의 대형프로젝트가 포함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표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형프로젝트를 캠프마다 급조하여 내놓는 상황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 아니던가!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이해 관계에 놓여 있는 지역 주민들이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것은 이해할 측면이 있지만 선거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이에 영합하여 국민과의 약속이니 뭐니 하며 떠들어 대는 것은 국가 미래에 대해서는 안중이 없는 그들의 후안무치와 몰염치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면밀한 검토 이후 국가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으로 판명된 잘못된 약속을 국민과의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강변하는 건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속이는 인기영합적 정치인의 비난받아 마땅한 저질스러운 행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선 캠프의 속성상 캠프에서 내세우는 공약들은 아이디어나 비전 차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공약이 바로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변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 캠프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정치인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국론의 분열을 가져오는 대형국가프로젝트의 공약 남발을 주도하거나 동조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다음 선거에선 그런 일을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고 반성하는 일이다.

    물론 집권 후 대선 당시 쏟아 놓은 아이디어들을 검토도 않고 내팽개쳐 버린다면 이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할 것이다. 가령 모지역에 모 대형시설을 건설하겠다고 해놓고선 집권 이후 검토조차 안 한다면 이는 약속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내놓은 아이디어들이 경제성이나 환경 영향성 측면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여부를 주무부처와 전문가 집단을 동원하여 면밀히 검토케 한다면 이는 공약 실천의 최소공배를 만족한 것으로 봐야 한다.

    면밀한 검토 이후 환경에 심각한 파괴를 주어 지속 가능한 성장에 회복 불가능한 큰 타격을 주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이는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다. 미래 세대에 심각한 재정 적자를 안겨줄 정도로 경제성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이 또한 유보하거나 파기하는 것이 정당한 처사일 것이다.

    우리보다 몇배, 몇십배 되는 인구와 땅덩어리를 가진 중국, 미국, 러시아, 인도 등도 모두 수도가 하나인데 좁디좁은 대한민국 수도를 몇 개로 갈기갈기 찢어놓는 고비용저효율 세종시의 미래는 명약관화하다. 불꺼진 전남도청이 세종시의 미래를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속철의 발달로 1시간 30분 내 전국이 연결되는 미래가 멀지 않은데, 인구와 땅면적이 일본의 삼분지 일밖에 안 되는 대한민국에 신공항이 생긴다면 그 미래 또한 뻔하다. 누적된 적자에 허덕이는 간사이국제공항이 신공항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당장은 비난을 받고 표를 잃는다 하더라도 국가백년대계를 생각하는 통큰 정치인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한 票퓰리즘의 저질 정치는 이제 뿌리뽑혀야 한다. 정책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해서 전문가들의 평가도 무시하는 오만한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그린투데이 발행인 한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