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준칼럼> 한나라당, 여당 자격 있나?

     

    목불인견의 육탄전 속에 내년 예산안을 단독 강행처리한 한나라당이 자축의 잔을 들기도 전에 내홍에 휩싸였다.

    예산안 강행처리에 성공한 뒤 한나라당은 ‘큰일을 해냈다’며 승리감에 도취했으나 이런 분위기는 이튿날 아침 산산조각이 났다. 예산항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음이 드러난 때문이다. 꼭 챙겼어야 할 예산은 빠지거나 줄어들고 대신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은 증액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년도 템플스테이 지원예산을 최소한 올해 수준(185억원) 이상으로 책정하겠다고 불교계에 약속했는데 통과된 예산은 60여억원이 줄어든 122억5000만원이었다. 정부와 당 대표, 최고위원들이 불교계를 찾아가 어렵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꼴이 됐으니 경악할 만도 하다.

    당장 불교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앞으로 정부 관계자와 한나라당 의원들의 사찰 출입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종단 차원에서 반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반여(反輿) 정서가 강한 강원도의 민심을 잡기 위해 약속했던 춘천-속초간 동서고속화철도 사업비 30억원은 아예 예산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재외동포 투표권 부여를 앞두고 정성을 기울인 재일민단지원사업은 전년의 70억원에도 못 미치는 51억원밖에 책정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일부 실세 의원들이 여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놓치지 않고 두둑이 챙겼음이 드러났다.

    이상득 이병석 의원이 관련된 경북 포항·울릉 지역구의 경우 1430억원이나 증액되었고 예결위원장인 이주영의 지역구(경남 마산갑) 예산은 430억원이 늘어났다. 이밖에 무소속의 박희태의원(경남 양산), 민주당의 박지원의원(전남 목포), 서갑원의원(전남 순천)과 자유선진당의 이회창대표(충남 홍성·예산), 김낙성의원(충남 당진)의 지역구 예산도 증액되었다.

    단상을 중심으로 육탄 공방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쪽지’를 주고받으며 실속을 챙겼다니 이들이 정말 국가를 걱정하고 국회 파행을 개탄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안상수 대표가 예산안 강행처리 다음날인 9일 오전 열린 한나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장에서 고성으로 여당 지도부를 비난했다고 한다. 당이 추진했던 핵심사업들에 대한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으니 어찌 조용히 넘어갈 일인가.

    안 대표는 “우리 당 예결위원들이 자기네들 관련 예산만 챙기느라 그런 것 아니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의 눈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제 잇속만 챙기느라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로밖에 안 보이는데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 궁금하다.

    <뉴데일리 부사장/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