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별꼴이야.」
    쓴웃음을 지은 정유나가 윤대현을 보았다.

    윤대현은 멀쩡한 얼굴로 앉아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중이다. 오후 6시가 되어가고 있다.

    「형, 혹시 이재영이라는 실물이 있는 건 아니지?」
    정유나가 묻자 윤대현은 정색한 채 머리를 저었다.

    장안평 동남호텔 근처의 조그만 카페 안이다. 아직 초저녁이어서 손님은 그들 둘 뿐이었고 종업원도 보이지 않는 홀은 을씨년스럽다.

    정유나가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커피를 삼키더니 다시 묻는다.
    「근데 눈치를 보니까 그 애가 크게 실망한 것 같지는 않던데? 나중엔 난 모르겠다고 마구 짜증을 내더만 그래.」
    「그럴 수밖에.」
    「진짜 그 애가 형을 좋아하는 거야?」
    「그렇다니까.」
    「하긴 그렇다면 충격은 받았겠다.」
    「어쨌든 잘했어.」
    「졸지에 내가 애기 엄마가 되어서 기분이 묘해.」

    정유나가 눈웃음을 쳤다. 색기(色氣)가 쏟아지듯 풍겨 왔으므로 윤대현은 심호흡을 했다.

    정유나는 이곳 「미림」카페의 새끼 마담이다. 윤대현보다 한 살 어린 스물 셋이지만 열여덟살때부터 이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노장(老將) 축에 든다.

    그때 다시 윤대현이 손목시계를 보았으므로 정유나가 눈을 흘겼다.
    「자꾸 시계 보지마. 짜증나.」
    「알았어. 미안.」
    「일주일 후부터 게임이라면서 오늘은 나하고 몸좀 풀면 안돼?」
    「게임 끝나고.」
    「그때도 끝나고 뛰자더니 걍 도망갔잖아?」
    「인마, 그땐 졌잖아? 진 놈이 무슨 낯짝으로 니 앞에 나타나?」
    「핑계는.」

    정유나가 탁자 위에 놓인 담배갑을 집어 들었다.

    「미림」의 주인 백동태는 프로모터다. 그러나 제 말로 프로모터지 비밀 이종격투기 시합의 주선자겸 윤대현의 매니저인 것이다. 돈 킹 같은 프로모터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품은 정유나가 윤대현을 보았다.
    「형, 걔 이뻐?」
    「아니.」
    대번에 윤대현이 대답하자 정유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새어머니가 데려온 딸이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눈치를 보여서 그런다고 윤대현이 전화를 부탁했을 때 정유나는 선뜻 응락했던 것이다. 그런데 끝내고 나더니 말이 많다. 다시 정유나가 입을 열려는 순간이다.

    윤대현이 이번에는 일부러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더니 정유나에게 물었다.
    「사장 오려면 한시간쯤 있어야 되지?」
    「왜? 어디 가려구? 사장님이 여기서 기다리라구 했단말야.」
    「그러니까 한시간은 남았지?」

    다시 윤대현이 묻자 벽시계를 본 정유나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쯤 남았어.」
    「그럼 안쪽 방에 가서 한번 몸 풀자.」
    「미쳤나봐.」
    「나, 섰어.」

    그러자 정유나가 눈을 흘겼다.
    「싫어. 그렇게는.」
    「오늘은 걍 스파링만. 메인 게임은 이따가 일주일 후에.」
    「싫다니깐.」
    「우리가 여기서 한두번 했냐? 오늘은 왜 빼는겨?」

    그때 입구로 카페 주인 백동태가 들어섰다. 한시간 후에 돌아온다면서 빨리 온 셈이다.

    정유나가 눈을 흘기면서 일어섰고 백동태는 웃음 띤 얼굴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