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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재영이라고 하는데요.」
여자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불안한 것 같다.답답해진 고수연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다시 묻는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윤대현씨는 조금 전에 나가셨는데요.」
「네에, 저기.」
「말씀하세요.」궁금해진 서미정이 고수연의 옆으로 다가와 앉는다.
그때 여자가 말했다.
「저기, 대현오빠가 전화를 안받아서 그러는데요.」
「그래서요?」
「애기 분유 살 돈도 없다고 좀 전해주세요. 내일부터 애기가 굶는다구요.」
「네에?」눈을 둥그렇게 뜬 고수연이 옆에 앉은 서미정을 보았다. 얼굴도 하얗게 변해져 있다.
서미정이 입술만 움직여 「왜?」라는 말을 만들었으므로 머리를 젓고 난 고수연이 다시 묻는다.
「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다시한번 말씀해 주세요. 애기 분유 값이 없다뇨? 누구 애긴에요?」
「오빠 애기요.」
「누구요?」
「대현오빠 애기요. 내 애기기도 하구요.」다시 입을 쩍 벌렸던 고수연이 서미정을 보고는 그 모습 그대로 머리를 젓는다.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서미정은 이제 머리를 고수연이 들고있는 송수화기에다 들이밀었다.
다시 고수연이 묻는다.
「전 이해가 안가는데요. 윤대현씨는 결혼 안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저기, 이번에 아버님이 재혼하신 분 따님 맞지요?」
「네?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세요?」
「지난번에 대현오빠가 말해 주었어요. 곧 같이 살게 되신다구요.」
「전 모르고 있었어요. 정말...」
「아버님도 아직 모르고 계세요.」
「그럼.」
「제가 급해서 이렇게 전화 했어요. 아버님이 받으셨다면 그냥 끊었을거에요.」
「윤대현씨는 지금 합숙 갔어요. 열흘쯤 후에나 집에 돌아온대요.」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안받아서 그런데 연락 좀 해주시겠어요?」
「그건 좀 곤란한데요.」심호흡을 한 고수연이 여자가 앞에 있는 것처럼 머리까지 저었다.
「전 윤대현씨 핸드폰 번호를 모르구요.」고수연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서둘러 말을 잇는다.
「그런 일에 엮이기 싫으니까 두분이 알아서 해결하세요. 이만 끊을게요.」
그리고는 전화기가 부서질 듯이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이제 고수연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아, 시발놈. 드러 죽갔네.」고수연이 씹어뱉듯 말했을 때 서미정이 와락 물었다. 이쪽 말은 다 들었고 그쪽 말은 일부분만 엿들었지만 윤곽을 잡았다.
「어, 어떻게 된거야?」
그러자 고수연이 모자란 부분을 보태주었고 말이 다 끝났을 때 둘은 잠깐 침묵했다.「에이, 드런놈.」
마침내 서미정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눈을 치켜 뜬 서미정이 몸서리를 치는 시늉을 했다.
「개새끼처럼 싸고 댕기다가 가출한 미성년자한테 덜컥 애 하나 맹글어준 것 같다. 분위기 보면 틀림없어.」
「아이구, 그만. 골아퍼.」머리를 저은 고수연이 손까지 저었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왠지 개운하다, 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