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날 오후, 도서관에 앉아있던 윤대현에게 최병태가 다가왔다.

    「야, 나가자.」

    그리고는 앞장서 나가는 바람에 입맛을 다신 윤대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서관 밖 빈 벤치에 나란히 앉았을 때 최병태가 머리를 돌려 윤대현을 보았다.

    「야, 놀랐어.」
    윤대현은 시선만 주었고 정색한 최병태가 말을 잇는다.
    「숙화대에서 고수연 모르는 여학생이 없더구만. 완전 퀸카야.」

    그러더니 와락 손을 뻗쳐 윤대현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눈을 부릅뜨고 있다.
    「얀마, 뭐? 걸레? 좃같다고? 너, 니가 어떻게 해볼라고 그런 거 아녀?」
    「이 미친놈이.」

    손을 털어낸 윤대현이 으르렁거렸다.
    지금 최병태는 고수연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수연이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가는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안면이 있는 숙화대 3학년 재학생을 만나고 온 길이다.

    최병태가 말을 이었다.
    「장학생이야. 평도 좋고, 지난 6월 개교기념일 행사에서 숙화여왕 2위로 뽑혔지만 수상을 거부하고 나타나지 않았어. 투표로 뽑혔는데도 말야. 그래서 인기가 더 올라갔어.」

    입가에 게처럼 흰 거품을 일으키며 최병태가 윤대현을 노려보았다.
    「넌 인마, 졸지에 횡재를 한 것이나 가터. 없는 집에 돈 벼락이 떨어졌다구. 너같은 놈이 숙화여왕 2등하고 같은 집에 살다니. 이건 로또 1등보다 나은 거라구. 어이구, 난 언제 울아버지가 재혼을 하나?」

    이제 최병태는 제 신세타령으로 돌려졌다.

    윤대현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앞쪽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조금도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뭐? 숙화여왕? 웃기고 자빠졌네. 그러니까 인간은 겉모습만 봐서는 모르는 것이다.
    그 조개가 얼마나 싸가지가 없는지 드러나면 숙화걸레 2등이다.

    다시 최병태의 말이 이어졌다.
    「얀마, 걔 보려고 남자 놈들이 학교 앞에서 줄을 선단다. 잘 빠졌다며? 시발놈. 그런 말은 안해주고, 뭐? 방송국에서 걔 데려가려고 사람을 보냈다는 말도 있었다더라.」
    「지랄하고. 인제 곧 칸느 연화제 가겠고만.」
    「고시 패스한 설 법대 출신 놈자도 엉뎅이를 찼다드라.」
    「얼시구.」
    「오늘 너허고 느그집 가자.」
    하고 최병태가 바짝 다가 앉았으므로 윤대현이 몸을 비껴 피했다.

    「저리가, 짜샤.」
    「오랫만에 놀러가자는겨.」
    「꺼져.」
    「내가 술 살께.」
    「저리 안가?」
    해놓고 윤대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최병태를 쏘아보며 말했다.
    「너, 내가 뒷조사 시켰다는 말 나갔다가는 죽을 줄 알아.」
    「염려마. 걘 내가 누군지도 몰라.」

    「니 생각은 어떠냐?」
    윤대현이 발을 떼며 묻자 최병태가 옆을 따르며 되묻는다.
    「뭘 말야?」
    「그 기집애도 내 뒷조사를 하지 않았을까? 너 같이 촉새같은 기집애를 시켜갖고 말야.」
    「그렇겠지.」

    눈을 찌푸렸던 최병태가 말을 잇는다.
    「기집애들 촉수도 만만치 않으니깐 말야. 아마 지금 너를 씹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현대전은 정보전이다. 정보를 많이 갖는 쪽이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