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28)

     그날 밤 파티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윌슨 총장을 비롯해서 10여명 정도가 모였는데 모두 교수였고 학생은 초대하지 않았다.

    저녁을 마치고 홀의 소파에 제각기 흩어져 앉았을 때 윌슨이 불쑥 나에게 물었다.
    「독립운동을 할텐가?」
    「그렇게 해야겠지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대답하자 주위의 교수들이 큭큭 웃었다.
    밝은 분위기여서 내 대답이 테니스라도 하겠다는 것으로 들린 것 같다.

    그러나 윌슨은 정색한 채 말을 잇는다.
    「일본의 기세는 상승하고 있어. 그리고 주위 환경도 모두 일본 편이야.」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을 때 둘러앉은 교수들도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나 윌슨이 다시 묻는다.
    「그래, 꼭 돌아가겠는가?」
    「예, 총장님.」
    「난 이번 졸업식을 끝으로 교직을 떠날 계획이네.」

    윌슨이 주위를 둘러보며 얼굴을 펴고 웃는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난 조지아주 주지사로 출마 할 걸세.」
    「총장님은 주지사로 만족하실 분이 아니죠.」
    교수 하나가 거들었고 다른 교수가 말을 받는다.
    「대통령이 되실 분이죠.」
    「가만.」
    손을 들어 말을 막은 윌슨이 나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럼 고국에 돌아가서 할 일은 정해 놓았나?」
    「YMCA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가 조금은 안전하겠지.」
    윌슨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본의 손바닥 위에 앉아있는 셈이야. 몸조심하게.」

    윌슨은 만학도인 나를 친구처럼 때로는 동생처럼 대해 주었지만 미국 정부의 정책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항하는 동북아의 일본을 우방으로 삼았다. 또한 일본으로부터 필리핀 점유를 인정받는 대신으로 한반도를 일본령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내가 루즈벨트의 호의에 환호했을 때 루즈벨트는 뒤에서 그런 수작을 부렸던 것이다.

    그때 내가 윌슨에게 말했다.
    「미국은 일본을 믿으면 안됩니다. 틀림없이 미국을 배신할 것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지만 대부분이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러나 윌슨은 정색한 채 머리를 끄덕이고 있다. 계속하라는 표시였다.

    내가 말을 이었다.
    「3백년 전에도 일본은 조선 땅에 침입해 7년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때도 일본은 조선을 정벌하고 중국까지 진출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지요. 일본의 호전성과 야만성을 미국인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말을 할수록 내 가슴은 점점 가라앉았다. 주위의 반응이 차가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모두 나에 대해 호감을 품고 있었지만 국가간 이해가 걸린 문제가 되면 미국인일 뿐이다.

    그때 윌슨이 말했다.
    「알겠네, 리. 자네 심중도 이해하고 일본의 야만성, 호전성도 내가 잊지 않도록 하겠네.」

    그때 엘리엇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자, 조선인 최초의 미국 정치학 박사 탄생을 위해 건배합시다.」
    「건배.」

    모두 술잔을 들고 외쳤는데 나의 지루한 이야기가 끝나 기쁜 것 처럼 보였다.

    그 눈치를 채었는지 윌슨이 말했다.
    「리, 긴장을 가끔은 풀어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