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27)

     내 박사학위 논문은 「미국의 영향을 받는 중립」이란 제목을 붙였다.
    지도교수 엘리엇의 협조를 받아 1910년 봄부터 논문을 작성하는 한편 나는 내 주변을 정리했다.
    문양목의 말대로 귀국하는 즉시 처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이었으나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5년 동안 필사적으로 공부를 한 것은 미국에서 출세하려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가 되어가는 조선에서 일본놈 지휘를 받는 관리가 되는 것도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전처럼 대놓고 계몽 활동을 할 수도 없을테니 교사로써 가르치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에 로스앤젤리스에서 「독립정신」이 출간되었고 하버드에서는 내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박사 논문만 통과되면 조국을 잃은 만학도가 개인의 성취와 함께 민족의 이름을 빛내게 되리라.

    그 해(1910년) 5월 중순의 어느 날, 교수실로 들어선 나에게 엘리엇이 말했다.
    「지금까지 조선인, 아니, 대한제국인 중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없더군.」

    나는 그것까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으므로 잠자코 앞쪽 의자에 앉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이미 제출 해 놓았고 심사 발표만 남은 상황이다.

    다시 엘리엇이 말을 잇는다.
    「프린스턴의 정치학 박사는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채용이 되거나 관리가 되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하지. 물론 자네가 미국 시민권을 받는다면 더 쉽게 되겠지만 말이네.」

    머리를 돌린 나는 창밖을 보았다.
    교정의 울창한 나무숲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열린 창문을 통해 풀 냄새와 함께 남녀 학생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기회의 땅, 풍요로운 땅이기도 하다.

    그때 엘리엇이 말을 잇는다.
    「식민지가 되어있는 그대 조국에서 정치학 박사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나는 머리를 돌려 엘리엇을 보았다.
    지금까지 엘리엇은 한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중립에 대한 자료를 추천해 주었으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다.

    내 시선을 받은 엘리엇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묻는다.
    「리, 미국에 온지 몇 년 되었나?」
    「5년 5개월이 되었습니다.」
    「5년 5개월 만에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군.」

    혼잣소리처럼 말했던 엘리엇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리, 그대 박사 논문이 통과되었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축하하네. 리, 훌륭했어.」

    나는 엘리엇의 마지막 말, 훌륭하다는 단순한 표현에 목이 메었다.
    엘리엇의 손을 쥔 내가 외면했지만 갑자기 흘러내린 눈물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것을 본 엘리엇이 쥔 손을 세게 흔들었다.

    「리, 그대는 조선인 최초의 정치학 박사일세. 프린스턴 뿐만 아니라 전 미국에서 최초일세.」

    나는 이를 악문 채 손바닥으로 눈물을 씻었다.
    이런 순간에는 꼭 태산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내가 겨우 말했을 때 엘리엇이 한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윌슨 총장이 오늘 저녁에 관사에서 축하 파티를 해 주겠다는군. 교수 몇 명하고 대학원장까지 부른다고 하네.」
    그러더니 엘리엇이 생각난 듯 덧붙였다.
    「윌슨은 이번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난다고 하네. 곧 뉴저지 주지사로 출마 한다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