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26)

     문양목은 내가 한성감옥서에서 집필했던 「독립정신」의 출간 문제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독립정신」은 박용만이 트렁크 밑바닥에 숨겨 미국에까지 가져왔지만 집필한지 6년이 되도록 출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번에 로스앤젤리스에서 문양목이 출간하려는 것이다.

    「조선 민중에게 읽히고 싶었는데 미국 땅에서 출간이 되는군요.」
    교정이 끝난 원고를 보면서 말하는 내 가슴이 감회로 무거워졌다.

    이미 조선 민중은 일본의 식민이 되어있는 것이다. 「독립정신」은 조선 땅에 들여 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때 문양목이 말했다.
    「이공, 이 책을 미국 땅의 1만 조선인들이 다 읽도록 합시다. 그리고 만주, 중국 땅으로 이 책이 번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오.」
    문양목의 말에 열기가 띄워졌다.
    「그래서 그 열기가 역으로 조선 땅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인간은 둘이 만났을 때 한분 선생이 있고 셋이 모였을 때는 선생이 두분 계시다는 말이 있다. 상대방이 노소, 귀천, 학식이 있고 없음을 떠나 배울 점이 꼭 있다는 뜻이다.

    문양목의 끈기와 의지는 본받을 만하다. 이런 집념이 장차 조국의 독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양목이 말을 잇는다.
    「이번 달 안에 독립정신이 출간 될 것입니다. 이공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오.」

    대동보국회를 이끌었던 문양목은 나에게 회장이 되어달라고 청을 넣었기도 했다.

    기숙사의 내 방 안이다.
    오후 4시경이어서 기숙사 안은 조용하다. 이 시간에는 학생 대부분이 도서관이나 강의실에 있을 것이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문선생, 나는 이번 박사 과정을 마치면 조선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문양목이 놀란 듯 굳어진 얼굴로 시선만 주었다.

    나는 이미 미국 땅 안에서도 요주의 인물인 것이다. 일본 통감부 지배하에 놓인 조선으로 돌아가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예측 할 수가 없다. 내가 한성감옥서에 갇히던 때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가서 견디어 보겠습니다. 실제로 겪고 나서 어떤 방법이 나을지 판단을 할 것입니다.」
    「이공, 일본놈들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이미 이공은 애국동지회 회장으로 일본놈들의 감시 대상에 오른 인물이요.」
    「압니다.」
    「조선 땅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범의 입안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나 같소.」
    「그래도 갑니다.」
    「올해에는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합병한다는 소문이 퍼져있소. 그러니 더 위험합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이제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순종 황제는 허수아비일 뿐으로 조선 땅은 통감부의 지배하에 놓여졌다. 군대는 진즉 해산되었으며 의병 활동도 막강한 일본군에 압도되어 약해지고 있다.

    그때 문양목이 책상 위에 놓인 독립정신 원고를 집어들고 말했다.
    「어쨌든 나는 이 독립정신을 출간 시키겠습니다.」
    문양목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공이 조선으로 가신다니 더욱 마음이 급해지는구려.」
    독립정신을 마치 내 유작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한동안 방안에 정적이 덮여졌고 이윽고 그것을 내가 깨뜨렸다.
    「문선생, 나는 일분일초가 아깝습니다. 내 나이 어느덧 서른여섯, 스무 살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개혁에 눈을 뜬 후로 벌써 16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룬 것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