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바 있는 어떤 정치인은, “왜 거짓말을 그렇게 하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은 없고 다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과 ‘거짓말’의 거리가 그리 먼 것은 아닙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약속을 지킨 분들이었습니다.

    미국의 초대대통령 워싱턴은 어려서부터 정직하였다는 일화가 많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인류역사에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뭇사람의 존경의 대상인 에이브라햄 링컨은 별명이 ‘어네스트 에이브(Honest Abe)’ 즉 ‘정직한 에이브라햄’이었습니다.

    겨레의 존경을 받는 도산 안창호는 상해에 망명 중이었습니다. 그를 잡아가려고 일본의 관헌이 시내에 잠복중이라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산은 꼭 외출해야 할일이 있다면서 문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안 됩니다” 라며 측근은 말렸습니다.

    그때 도산이 말했습니다. “내가 꼭 가야해. 1년 전에 내가 뉘집 어린아이에게 약속했거든. ‘네 생일에 선물 사 가지고 올게.’ 내가 안 나타나면 그 어린애가 얼마나 실망하겠냐.” 도산은 그렇게 한 마디 남기고 그 작은 어린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외출을 감행했다가 잠복한 일경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대전 감옥에서 3년간 복역을 하였습니다. 그 때가 바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의 의거가 있었던 그해였습니다.

    위대한 인물이란 조그마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고 나서는 사람입니다.

    <김동길/연세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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