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에서 형의 돌연한 서거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지난 2일 제 생일에 오셨을 때 몸이 수척한 것은 여전하셨지만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있다고 느꼈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그 날도 단 둘이 앉아서 김정일의 하는 짓을 잘 알고계신 터이라 “그 놈이 머리는 빨리 도는데 아주 나쁘게 돌아요”하며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제 집에 와서 점심을 나누고 떠나실 적에는 양복 속주머니에 용돈 쓰시라고 봉투 하나를 넣어 드리는 것이 동생인 저의 즐거움이었는데, 아! 이토록 허무하게 우리들의 관계는 끝나고 마는 겁니까. 서럽고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은 형이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고 나서 얼마 뒤에 아직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군의 보호 하에 계셨을 때, 하루는 단장되는 이가 전화를 하고 황장엽 선생이 김 교수를 만나고 싶어 하는 데 올 수가 있겠느냐고 묻기에 가겠다고 답하고 군의 정보기관이 관리하는 그 곳까지 찾아가 만나는 시간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군살이라고는 그 몸, 그 얼굴,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아니한 깡마른 형의 첫 인상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데 눈빛이 남달리 날카롭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하기야, 그 엄청난 희생이 뒤따를 줄을 다 알고 감히 몸을 격랑에 내던진 그런 ‘지독한 인간’의 표정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형은 나보다 5년이 연장이셨는데,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에 끌려가 소련국경 어디에선가 목숨을 잃고 작은 상자 속의 한 줌 재가 되어 집에 돌아온 저의 친형과 나이가 한 살 차이여서, 그런 인간적인 정을 더욱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형은 김영삼이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그런대로 견딜만했지만 그가 얼마 뒤에 물러나고 적어도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절대로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될 인간들이 그 집에 들어서게 되면서 예기치 못했던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김정일에게 아첨을 일삼는 자들이 대통령이랍시고 청와대에 들어앉았으니 형이 눈의 가시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겠습니다.

    두 차례나 형을 암살하려는 악당들이 당국에 의해 검거되었을 때 어떤 신문사의 기자가 물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느냐고. 그 때 황형은 대답했습니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한국사람 나이로는 88세, 천수를 누렸다고 여겨집니다. 내년 형의 생일에는 ‘산수’를 기념하여 우리 집 마당에서 냉면 파티라도 한번 크게 벌이고 싶었는데! 억울하게 목숨 잃은 부인과 다른 식구들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겠습니다.

    <김동길 /연세대명예교수>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