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24)  

     낮에 한 말은 새가 듣고 밤에 한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필라델피아의 일식당 다카야마(高山)에서 시바다와 두 정보원이 나눈 밀담은 이틀 후에 나에게 전해졌다.

    나를 찾아온 사람은 대동보국회 동부지역 책임자 윤재술.
    필라델피아에서 생선가게로 자리를 잡은 후에 열성적인 항일투쟁가가 된 사람으로 고향이 황해도 해주라고 했다.

    「다카야마 식당의 종업원 하나가 우리 정보원이거든요.」
    쓴웃음을 지은 윤재술이 말을 잇는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방심했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대학에서 멀찍이 떨어진 조그만 식당에 앉아있었는데 손님은 우리 둘 뿐이다.
    오후 3시쯤 되어서 활짝 열어 놓은 문 밖으로 6월의 무성한 풀숲이 펼쳐져 있다.

    그때 얼굴의 웃음을 거둔 윤재술이 나를 보았다.
    「회장님, 그래서 제가 이 일을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본부의 승인도 받았습니다.」
    「본부의 승인이라니요?」
    놀란 내가 물었더니 윤재술이 목소리를 낮췄다.
    「본부에 암호전보로 내용을 보고했더니 시바다의 처리를 나에게 맡기겠다는 연락이 왔단 말입니다.」

    윤재술의 눈동자가 똑바로 나에게 향해져 있다. 다부진 턱, 넓고 강인한 얼굴, 어느덧 입술도 굳게 닫쳐져 있다.

    「어떻게 처리 하실 겁니까?」
    내가 묻자 윤재술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우리가 먼저 암살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놈들도 당황하겠지요. 회장님에 대한 암살은 늦춰지거나 취소 될 것입니다.」

    윤재술은 나를 애국동지회 회장으로 부른다.

    「그 두 놈은 일본 대사관 소속의 조선인 정보원으로 장복남, 백경수입니다. 그놈들도 다음 순서로 처단 할 겁니다.」
    식탁위로 상반신을 굽힌 윤재술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 회장님께서는 우리가 그놈들을 처단 할 때까지만 조심해 주시지요. 기숙사와 강의실 밖으로 외출은 삼가셔야 됩니다.」

    「윤선생, 잠깐만.」
    손을 들어 보인 내가 물었다.
    「언제 행동하실 겁니까?」
    「내일 당장. 이미 행동대도 선발해 놓았고 권총도 모두 준비했습니다.」
    「......」
    「시바다가 저녁은 꼭 밖에서 사먹습니다. 그 때 거리에서 강도로 위장하고 사살한 후에 금품을 거둬 도주할 계획입니다.」
    「.......」
    「놈들이 눈치를 챌지 모르지만 증거가 없으니 유야무야 되겠지요.」

    눈을 치켜 뜬 윤재술이 다짐하듯 한마디씩 힘주어 말을 잇는다.
    「회장님은 내일 알리바이를 분명히 만들어 놓으시지요.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윤재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학교에서 나를 불러낼 때는 미국인 학생을 시켰고 이곳에 올 때도 같이 들어오지 않았다. 조심성이 많은 성품이다. 윤재술이 눈인사를 하고나서 몸을 돌렸으므로 나는 길게 숨을 뱉았다.

    시바다를 처형하겠다는 윤재술의 말에 나는 조금도 놀랍지가 않았다. 이곳도 전장이나 같은 것이다. 나 또한 나를 보좌관으로 끌어들이겠다면서 공작을 한 아카마스의 암살을 교사하지 않았던가?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

    윤재술이 식당을 나간 후에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열어놓은 문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에 매운 풀냄새가 맡아졌고 문득 그것이 피비린내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