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23)

     「이승만은 조선 땅에 있을 때부터 반일 활동을 해 온 놈입니다.」
    장복남이 유창한 일본어로 말하자 백경수가 말을 이었다.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간부로써 개혁을 이끌었고 특히 군중의 선동에 능합니다. 저도 이승만의 연설을 몇 번 들었는데 듣고 우는 군중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중추원 의관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반역 음모에 연루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서에 6년 가깝게 갇혀 있다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장복남의 말이 끝났을 때 시바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충 소문은 들었지만 전력이 화려한 놈이로군.」

    필라델피아 시내의 일식당 안이다. 저녁 무렵이어서 식당에는 손님이 많았는데 일본인이 대부분이다.

    시바다의 거침없는 일본어가 이어졌다.
    「윌슨 총장이 그 놈을 내세우고 다니는 바람에 대 일본제국의 유학생들 체면이 말이 아냐. 생각 좀 해보라구.」

    시바다가 붉어진 얼굴로 앞에 앉은 두 사내를 번갈아 보았다.
    「이곳에서는 식민지 놈이 주인 되는 나라의 선민(先民)을 깔아뭉개는 상황이 되었어. 이것은 윌슨 총장 탓만 할 것이 아냐. 윌슨에 빌붙어있는 이승만 그놈이 화근이라구.」
    「이승만 그놈이 전(全) 미국 조선족 대표자 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니까요.」
    하고 장복남이 말했을 때 시바다가 눈을 부릅떴다.
    「이봐, 아카마스씨가 이승만을 내버려 둔 것은 큰 실책이야. 그래서 결국은 조선놈들한테 당한 것이라구.」

    두 조선인은 제각기 시선을 내렸다. 그들은 아카마스의 정보원으로 지난번 덴버에서 나를 끌고 가려던 자들이다.

    시바다가 잇사이로 말했다.
    「이승만을 없애. 그놈을 놔둘 이유가 없어. 이건 대 일본제국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구. 당신 상관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도쿄에 연락을 하지.」
    잠깐 말을 멈춘 시바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그럼 대사 입장도 곤란해질걸?」
    둘은 시선을 내린 채 입을 열지 않는다.

    시바다가 누구인가? 유학생 신분으로 프린스턴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지만 주미일본대사관 촉탁의 직함이 있다. 그것은 육군 중장으로 육군성 요직에 있는 제 아버지의 후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머리를 든 장복남이 낮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를 하지요.」
    「그래야지.」

    만족한 듯 시바다가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오다, 당신 말을 믿겠어.」
    「천만에 말씀입니다, 시바다씨. 지난번에 덴버에서도 잡으려고 했다가 놓쳤지요.」
    말을 멈춘 장복남이 힐끗 옆에 앉은 백경수에게 시선을 주더니 입맛을 다셨다.

    「그런가? 이번에는 놓치지 마.」
    자리에서 일어선 시바다가 말을 잇는다.
    「그놈이 죽어 없어진다면 일본국의 기세는 치솟아 오를테니까 반면에 조선놈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지겠지. 그리고,」
    시바다의 얼굴에 다시 일그러진 웃음기가 떠올랐다.
    「스티븐스가 암살된 후로 미국인들도 조선놈들한테 호의적이 아냐. 잘 죽었다고 할거라구.」

    몸을 돌린 시바다가 식당을 나갔을 때 오다라고 불린 장복남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시바다가 맞는 말을 했어. 이젠 하루코 따위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구.」

    지난번은 하루코 때문에 실패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