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⑭  

     「잠깐, 나 좀 봅시다.」
    하고 뒤에서 조선말이 들렸으므로 나는 몸을 돌렸다.

    덴버의 주의사당 건너편 거리였는데 나는 점심을 마치고 혼자서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다가오는 두 사내를 보았다. 양복 차림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다가선 사내중 하나가 정색한 얼굴로 물었다.

    「이승만씨 맞지요?」
    「그렇습니다만.」
    대답은 했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때 사내가 말을 잇는다.
    「우린 일본 대사관 직원입니다. 우리하고 같이 가십시다.」
    「어디로 말이오?」

    내 목소리가 굵어졌다. 아래쪽 1백미터쯤 떨어진 식당에 박용만과 일행들이 모여있었지만 멀다. 그러나 호락호락 끌려가지는 않겠다.

    그때 잠자코 있던 나이든 사내가 말했다. 그의 조선말도 유창했다.
    「이승만씨, 당신은 대한제국 공사관이 폐쇄된 후에 일본대사관에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지금 무국적자 신분으로 미국 경찰에 의해 대한제국으로 추방이 됩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에 적을 두고 있을 때는 학장과 유력인사가 신원보증을 해주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때 사내가 말을 잇는다.
    「같이 가십시다. 대사관으로 가지 않으신다면 경찰에 인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지역대표자 회의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이들은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나를 잡은 것이다.

    이윽고 내가 말했다.
    「당신들하고 같이 갈 바에는 경찰서에 가겠소.」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자, 경찰을 부르시오.」

    한낮이어서 오가는 행인들이 많았다. 그러자 나이 든 사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당신은 열흘 안에 추방될거요. 그것은 내가 보증하지.」

    그리고는 손을 들었는데 갑자기 행인들 사이로 제복을 입은 경찰 두명이 나타났다. 경찰들을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내 표정을 본 나이든 사내가 입술 끝을 올리며 웃는다.
    「이승만씨는 유연성이 부족하오. 곧고 단단하면 부러지기 쉽지.」

    경관들이 다가서자 사내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경관, 이자는 증명서도 없이 미국 땅을 활보하고 있소. 일본 대사관이 정식으로 고발하니 체포해서 추방시켜 주시오.」
    「알겠습니다.」

    말을 맞추고 있는 터라 비대한 체격의 백인 경관이 내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증명서.」
    경관이 손을 내밀었으므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전혀 다른 얼굴이었지만 경관이 루즈벨트 대통령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경관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는 영어로 물었다.
    「경관, 당신이 거저 나서지는 않았겠지. 이 일본일들한테서 얼마 받았소?」
    「이 빌어먹을.」

    백인 경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이 노랭이 새끼가.」

    그때였다.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으므로 모두 몸을 돌렸다.
    「오다씨!」

    몸을 돌린 나는 눈을 치켜뜨고 서있는 하루코를 보았다. 하루코가 덴버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때 하루코가 다시 나이든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뭐하고 계신거죠? 벌써 당신이 내 아버지 직위에라도 오른 건가요?」

    하루코는 조선말로 소리치고 있다. 그것은 나도 함께 들으라는 의미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