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⑩  

     콜로라도주 덴버에 자리 잡고 있던 박용만이 나를 찾아 왔을 때는 하루코가 다녀간지 이틀 후였다.

    「형님, 이제 오십니까?」
    역시 박용만답게 내 숙소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가 웃으며 나를 맞는다.
    「아니, 네가 갑자기 왠일이냐?」

    박용만은 태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즉시로 달려와 주었는데 나를 붙잡고 소리 내어 울었다. 태산이를 나에게 데려다 준 사람이 박용만이다. 나하고 한성감옥서에서도 같이 고생했던 동생, 외아들인 나에게는 친형제나 다름없는 박용만이다.

    내가 감옥서에서 집필한 「독립정신」도 박용만이 가방 밑바닥에 숨겨 넣고 이곳 미국땅까지 가져와 주었으니 내 은인이나 같다.

    숙소의 걸상에 마주보고 앉았을 때 박용만이 대뜸 용건을 꺼내었다.
    「형님, 모두 덴버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나는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다. 박용만은 1월 초부터 덴버의 동포들과 합의하여 덴버에서 전 미국지역 동포 대표자회의를 개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용만이 말을 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대동보국회, 공립협회는 말할 것도 없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대표를 보내겠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잘했다.」

    박용만은 활동적이다. 의기와 뛰어난데다 적극성이 강한 박용만이 아니면 이렇게 이루지를 못했으리라.

    정색한 박용만이 나를 보았다.
    「형님, 형님이 꼭 참석하셔야 합니다. 대동보국회는 형님이 참석 하셔야만 덴버로 오겠답니다.」
    「허, 그럴 리가. 그건 네가 날 끌어 들이려는 수작이지.」
    「아닙니다.」

    정색한 박용만이 머리까지 저었다.
    「형님은 이곳 케임브리지 시골구석에 박혀 계셔서 자신의 명성을 듣지 못하고 계시오.」
    「허,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쓴웃음을 짓는 나에게 여전히 정색한 박용만이 말을 잇는다.
    「형님, 교만한 것보다 겸손이 과한 것이 더 꼴불견이요. 형님의 명성은 이곳 미국땅은 물론이고 조선 땅 동포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황제의 밀사로 헤이 국무장관을 만난 것부터 루즈벨트 대통령을 면담한 것 까지 다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장렬하게 자결한 민영환으로부터 밀서를 건네받았다는 것까지 소문으로 다 퍼졌다고 했다.

    그때 박용만이 말을 잇는다.
    「덴버에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릴테니 세계 각국의 참관인, 신문기자들이 다 몰려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 조선동포들의 대표자 회의를 부각 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덴버에서 미국 지역동포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박용만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형님, 제가 숙부가 물려주신 사업이 제법 되어서 여기 차비를 드립니다.」
    그리고는 빙긋 웃는다.
    「10불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공부에 바빠서 숙식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신다고 들었으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생색은 잔뜩 내놓고 차비는 적게 주는구나.」

    쓴웃음을 짓고 말한 내가 봉투를 집어 박용만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런 돈은 안받는다. 내가 어찌 네가 고생해서 번 돈으로 애국대회 차비를 쓴단 말이냐? 내가 번 돈으로 가겠다.」

    나는 평생 동안 남의 돈을 받아 모은 적이 없고 그래서 저축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결코 옹색하거나 비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