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⑧ 

     「아카마스를 놔둘 수는 없습니다.」

    내 말이 끝났을 때 김일국이 말했다. 김일국은 내 연락을 받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달려온 것이다.

    그때 김일국의 옆에 선 한재복이 말을 잇는다.
    「그 놈은 선생님을 끈질기게 회유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없애야 됩니다.」
    나와 안면이 있는 한재복이 김일국과 동행해 온 것이다.

    한재복이 길게 숨을 뱉았다.
    「그놈이 선생님한테 그런 제의를 해왔을 때는 미리 앞뒤를 재었을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다. 아카마스는 내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보국동지회에 연락을 해서 둘을 이곳 케임브리지로 불러들였다.

    함정이라면서 스티븐스의 암살을 만류했던 내가 오히려 함정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카마스에 대한 증오심이 자제력을 깨뜨렸다.

    내가 입을 열었다.
    「다음 주말에 워싱턴의 구(旧)대한제국 공사관 근처에 있는 「웨스턴」식당에서 아카마스의 생일 파티가 있어요.」
    머리를 든 내가 둘을 번갈아 보았다.

    둘도 긴장한 표정이다. 나는 초대를 받은 것이다.
    「그때가 기회인 것 같소.」
    그러자 김일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 처단하지요.」

    마치 물건을 처리 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보게 일국이, 일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닐세.」
    「선생님은 가만 계시면 됩니다.」
    김일국이 정색하고 말했다.
    「연루가 되면 안되니까 모른 척 하고 계십시오.」

    그러더니 눈을 부릅떴다.
    「그놈은 명이 길었지만 이번은 실수하지 않을테니까요.」
    지난번 실패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 주말이라면 서둘러야겠는데.」
    다급해진 한재복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우리 셋은 케임브리지 시내의 조그만 식당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는데 손님들은 서양인 뿐이다.

    내가 다시 말했다.
    「먼저 문선생의 지시를 받아야되지 않겠습니까?」
    문선생이라면 대동보국회의 지도자인 문양목을 말한다.

    그러자 한재복이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행동대 지원을 받아야 될 것이고 자금과 무기도 필요합니다.」
    한재복은 문양목이 거사를 반대하리라고는 생각도 안하는 것 같다.

    시선을 든 한재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저희들은 당분간 워싱턴에서 정보를 수집하겠습니다. 이선생께도 자주 연락을 드리지요.」

    아카마스는 미국에 거주하는 조선인 사찰의 총책인 것이다. 스티븐스에 이어 아카마스의 암살은 조선인 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 대동보국회로서는 내 정보가 단비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둘이 서둘러 먼저 식당을 나간 후에 나는 다소 어두운 마음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 6시경이어서 이층 숙소의 현관은 오가는 학생들로 꽤 붐비고 있다.

    생각에 잠긴 내가 계단을 올라 열려진 현관 안으로 들어서다가 문득 머리를 들었다.
    옆쪽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하루코가 기둥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던 것이다.    

    「아니, 하루코.」

    워싱턴대 기숙사에서 만나고 거의 2년 만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이 지나면서 차츰 서로 잊혀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같은 날 이곳에 나타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