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⑦ 

     그러나 스티븐스는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동보국회의 장인환과 공립협회 소속 전명운의 습격을 받았다. 전명운이 먼저 발사한 총은 불발이 되었으나 장인환이 정확하게 사격, 명중시킨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도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가 당연하다고 떠들어 댄 스티븐스의 처형은 미국 거주 동포는 물론이고 이천만 조선인의 울분을 씻어주는 효과를 내었으리라.

    그 소식을 들은 지 며칠이 지난 3월 말쯤 되었을 때였다.
    하버드대 문리과 대학원에서 나는 정치학의 5개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역사 강의를 받고 나오던 참이었다.

    나는 복도에 서있는 아카마스를 본 순간 놀라 숨을 삼켰다. 아카마스가 칼에 찔린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아카마스가 웃음 띤 얼굴로 다가왔다. 아카마스는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혼자다.

    「이공,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아카마스가 정중하게 물었고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오후 3시경이었는데 강의도 없다.
    「예, 좋습니다.」

    아카마스와 나는 교사를 나와 정원을 향해 놓여진 나무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잔디가 마악 솟아오르는 중이다.

    먼저 아카마스가 입을 열었다.
    「이공, 스티븐스만큼 일본국에 기여한 미국인도 없습니다.」
    머리를 돌린 아카마스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죽어서까지 일미 친선에 기여했고 조선과 미국과의 관계를 벌려 놓았지요. 일본 외교관 백명 몫을 해냈습니다.」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아카마스에 대한 증오심이 일어났다. 백제계라는 가면을 쓰고 일본의 개 노릇을 하는 위선자가 그 마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내 강한 시선을 받은 채로 아카마스가 말을 잇는다.
    「이제 이공은 대세를 알고 계실 겁니다. 대한제국은 곧 일본령이 됩니다. 식민지가 되는 것이지요.」
    「목적을 달성 하셨으니 아카마스 영사께서도 승진하시겠습니다.」

    마침내 내가 말했더니 아카마스가 태연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번에 감독관으로 승진을 했습니다. 미국 전 지역의 조선인을 보호, 관리하는 직책이지요. 공사 다음의 서열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카마스가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답례를 하는 바람에 나는 다시 어금니를 물었다.
    노회한 인간이다. 내가 비아냥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나온다.

    그때 아카마스가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이공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내 시선을 받은 아카마스가 말을 잇는다.
    「내 보좌관 직책을 맡아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물론 비공식이지만 내부에서는 영사 급 직위에 맞는 대우를 보장 해드리겠습니다. 대한제국의 품계로 따지면 군수 쯤 되겠습니다.」
    「......」
    「이것은 궁극적으로 조선인을 위한 일입니다. 이공께서 가교 역할을 맡아주시면 미국 땅의 8천 조선인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스티븐스보다 아카마스를 제거했어야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살의를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