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⑥ 

     샌프란시스코의 대동보국회 회장 문양목이 보낸 밀사가 나에게 왔을 때는 1908년 2월 초쯤 되었다.
    추운 날씨여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도서관 로비 구석에 나란히 앉았다.

    밀사 이름은 한재복, 이제 대동보국회원이 되어있는 김일국은 갑자기 복통이 일어나 함께 오지 못했다고 했다.

    인사를 마치고 나서 한재복이 용건을 꺼내었다.
    「선생님, 다음달 3월에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 오는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나는 잠자코 시선만 주었다.

    스티븐스(D. W. Stevens)는 누구인가?
    본래 워싱턴 주재 일본공사관 촉탁 고용원이었다가 1904년 12월 27일 일본측에 의해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 임명된 일본의 앞잡이,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외교 책임자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내세워 미국인의 호감을 얻으며 조선 지배의 정당성을 호도해왔다. 참으로 간교한 술책이다.

    내 시선을 받은 한재복이 말을 이었다.
    「문회장은 이번에 스티븐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하여 조선인의 기개를 만천하에 알리고 그동안 스티븐스가 자행한 앞잡이 노릇에 대해 복수를 하겠답니다.」
    한재복의 얼굴은 어느덧 상기되어 있다.

    내가 대동보국회의 지도자 맡기를 사양했지만 문양목은 자주 밀사를 보내 계획을 상의했고 자문을 구했다. 그들의 호의에 감동한 나도 힘껏 상담 역할은 해주었다.

    정색한 한재복이 똑바로 나를 보았다.
    「선생님, 이번 거사에 공립협회와 연합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공립협회쪽에 서한이라도 보내주시면 그들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밀사의 목적은 이것이다.

    그동안 원수처럼 지낸 두 조직이 결속할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을 이름이 제법 알려진 내가 공립협회측에 서한을 보내 연합 제의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때 얼굴을 굳힌 내가 말했다.
    「문선생과 대동보국회 간부들께 전해주시오. 스티븐스 사살은 일본놈들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라고 말이오.」

    놀란 한재복이 숨을 죽였고 나는 말을 이었다.
    「그것으로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조선인 동포들의 기세가 잠깐 솟을 수는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 반작용은 몇십배가 더 크게 올 것이오.」
    「왜 그렇습니까?」
    한재복의 표정과 목소리는 굳어져 있다. 이해 할 수가 없다는 표시다.

    내가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했다.
    「스티븐스는 미국인이요. 미국인을 미국 땅에서 사살 한다는 것은 미국 땅의 8천 조선인에 대한 반감뿐만이 아니라 조선에 대한 반감이 미국인들에게 번질 것이오. 그것을 일본 놈들이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스티븐스는 용서할 수가 없는 놈입니다. 그리고 미국 땅에서 미국놈을 죽인다는 기상은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놈이 좋아할 일은 안하는 것이 조선 땅과 민중에게 이득이요.」
    「미국놈들에게 조선인의 기개를 보일 것입니다. 선생님.」
    「멀리 보아야 합니다.」
    「대동보국회는 이미 결정을 내린 일입니다 선생님.」
    한재복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으므로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스티븐스가 조선 땅에서 죽는다면 더 좋을 것을.」
    혼잣소리처럼 말한 내가 길게 숨을 뱉았다.
    「만일 스티븐스를 이곳에서 사살한다면 스티븐스는 죽어서까지 일본놈을 위해 일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이 된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