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통상부 특혜 채용 의혹이 일었던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딸이 3일 논란이 확산되자 채용 절차를 포기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유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고, 외교부의 '특권의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공정한 사회'와 관련, 민심은 매서운 반응을 보였다.
◆오만하던 유명환, 靑 경위파악 내려지자 몸낮추며 사과
"MB-한나라당, 유명환 버려야 살 수 있다"= 딸 채용 특혜 의혹이 불거진 초기만 하더라도 유 장관은 "장관의 딸이니까 오히려 더 공정하게 심사하지 않았겠느냐"며 특혜 의혹을 부인하면서 도리어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몇시간 지나지 않아 유 장관은 기자회견을 자청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고용되는 것이 특혜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딸의 공모 응시를 취소했다고 긴급진화에 나섰다.
유 장관이 입장을 바꾼 시간 동안 청와대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이같은 사실을 보고 받고 특혜 의혹 경위파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유 장관의 사과가 진심이었더라도 일련의 과정은 그의 진정성에 의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유 장관 사건은 전형적인 '강남 멘탈(mental.정신)'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이 관계자는 "소위 가진 자들끼리 공직세습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특권의식을 누리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무감각함이 전형적인 '강남멘탈'"이라며 "한국의 고위공직자들에게는 도통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아볼 수 없으니까 외국과 달리 한국의 재벌이나 보수가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MB와 한나라당이 유명환을 버려야만 살 수 있다"고 단언했다.
◆ 네티즌 "도덕성의 끝, 철면피함 극치 보여준다"
"일반인 머리터지게 싸워야 미화원 자리 하나 주는데..."= 유 장관의 딸 유현선(35)씨는 공채가 아닌 별도의 필기시험이 없는 특채로 합격하면서 유.무형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컸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씨는 1차 공고에서 영어성적 증명서의 유효기간이 지나 탈락했지만 다른 지원자가 모두 탈락하면서 재공고가 나자 다시 지원해 합격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선 외교부가 유씨를 위해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유씨는 졸업 후 다국적 컨설팅회사인 아서앤더슨에서 일하다가 지난 2006년 한.미 FTA기획단 특채에 합격해 2년 계약직으로 외교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린 네티즌은 "결국 지들끼리 해먹고 차지할 자리 다 차지하고 나머지 일반국민들은 머리터지게 싸워야 미화원 자리 하나주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했고, "현대판 음서제도 부활이냐. 사실이라면 도덕성의 끝, 철면피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외교부가 유명환 장관 사조직인가" 등 성토글을 올리고 있다.
네티즌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음 아고라에서는 유 장관의 진상규명을 감사원과 검찰에 요청하는 서명운동이 일어났다.
발의한 네티즌은 "외교부에서는 1차 서류 전형에서 장관의 딸이 유효기간이 지난 토익점수로 무효처리가 될 것 같으니까 적격자 없다는 구실로 전원 불합격시켰다"며 "그러나 한 달 뒤 유효점수를 제출하고 유 장관의 딸만 홀로 합격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서명서는 현재 서명인원 500명을 넘었으며 5만 명을 목표로 이달 30일까지 서명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
- ▲ 연합뉴스ⓒ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외교통상부 5급 사무관 특별채용에서 유 장관의 딸이 합격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3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합동브리핑실에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외교부 직원 가족들만 발급받는 '외교관 여권'은 특혜의 상징?"특권의식, 폐쇄성 심각...외교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외교부의 특권의식으로 인한 부작용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는 말이 나온다. 일례로 외교부 공무원들은 다른 정부 부처 공무원이 사용하는 관용 여권이 아닌 '외교관 여권'을 사용한다.
외교관 여권은 외교부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발급돼 국제법상 치외법권 지위와 함께 출입국.세관 수속과정에서 편의 제공, 유학시 50%학비 할인, 외교관 면세 혜택 등을 받는다. 지난 2006년엔 외교부 고위 공무원의 아들이 외교관 여권으로 입국하면 세관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단 점을 악용, 3차례나 마약을 갖고 들어와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이 이같은 특혜 시정을 요구하는 보도자료를 냈지만 이후 얘기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권 의원은 "외교부가 청와대에 문제를 개선한다고 보고하고도 이를 아직까지 고치지 않은 것을 보면 외교관 여권이 외교부의 특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 진로교육상담을 맡고 있는 관계자는 "외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업군은 국가를 대표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예외조항을 많이 적용받고 있다"면서 "그 혜택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자란 자녀들에겐 '특권의식'이 자리잡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직 외교관 자녀인 한 인사는 "유 장관과 딸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일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한 것 자체가 외교부의 폐쇄성과 특권의식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간 외교부 내에 특혜와 특권의식이 만연했고, 올 것이 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외교부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고 까지 표현했다.
◆'공직자 청문회' 끝나자마자 '공정한 사회 청문회'로
여권 '피해 최소화' 부심 v 야권 '청년 실업난' 불놓기
= '유 장관 딸 특혜 사건'을 두고 여권 부담은 커졌다. 인사청문회 대상자 3명이 모두 '도덕성' 문제로 낙마해 비판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3명의 고위공직자 후보를 잃은 여당에 대한 동정론이 모아지는 분위기도 감지됐었다. 전날(2일) 한나라당이 여야 합의없이 비리혐의와 관련된 민주당 강성종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대한 본회의 단독소집을 요구한 것도 이같은 동력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우선 여당은 피해 최소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유 장관 딸의 특혜 논란이 불거지자 즉각 논평을 내 "한 명만 선발하는 시험에서 해당부처 장관의 딸이 선발됐다는 것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오해할 여지가 있다"며 "고위공직자일수록 오해받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안형환 대변인)고 선긋기에 나섰다.
반면, 야권은 인사청문회 후 9월 정기국회 주도권을 쥘 찬스를 잡게 됐다. 반응은 당장 민주당에서부터 나왔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회의에서 "외교부 장관의 딸을, 그것도 한 사람만 특채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인가 또 다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고, 전현희 비대위 대변인은 "불공정한 자녀의 특혜취업에 대해 유 장관은 대한민국 청년실업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유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 소속 외통위원들도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 장관은 즉각 사퇴하고 검찰은 외교부의 불법적 특채과정 전반에 대해 낱낱이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장관 딸만 특채하면서 과연 '공정한 정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특별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특별채용'도 이명박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인가"라고 맹공을 가했다.
이렇듯 야당은 지난 8.15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한 사회'를 거론하며 공격에 열중하겠단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또 '공정한 사회'라는 프레임에 성난 민심을 이용, '청년 실업난'과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구도를 더해 정부여당에 맹공을 쏟는다는 방침이다.
결국 '유명환 딸 특혜 논란'으로 9월의 여야는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인사 청문회가 아닌 '여론 청문회'에 서게 된 것이다. <임유진 기자>





